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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일 월요모임 메세지

아가페 2006-12-22 (금) 10:57 19년전 5308  

사도행전 21장.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수년 전에 교회 청년부 새 신자 사역을 돕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모임을 마친 후 어느 자매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기도제목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자매가 요즘 고민이 되어 기도하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선교단체 간사로 지원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눈을 감고 기도하면 지원해야할 것 같고 눈을 뜨면 반대하는 부모님께 죄송하고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기가 아깝고 결혼문제가 생각이 나서 주저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답해주겠습니까?


직장사역자이 아니라 전임사역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얘기를 나누면서 부르심 앞에서 갈등하고 있는 그의 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눈을 감고 기도할 때의 생각이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인 것 같네요. 그것을 선택하세요.”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수주 후에 자매는 직장을 사직하고 간사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청년부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서 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 자매의 아름다운 헌신은 우리에게 감동과 도전을 주었고 마음이 하나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공동체 안으로 흐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수개월 후 밝고 행복한 자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모두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사도행전 21장에 보면 바울이 비슷한 갈등을 겪는 사건이 나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작별을 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갑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와 소아시아의 교회 대표를 동행하여 구제헌금을 가지고 가면서 바울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가는 곳 마다 성령이 사람들을 통해서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는 경고를 계속 하셨습니다.

고스, 로도, 바다라, 구브로 연해를 항해하여 두로에 도착했습니다.

두로에서 제자들을 만나는데 거기서도 성령의 감동을 받고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또다시 돌레마이에 들러 형제들을 만났다가 가이사랴에 들러서 전도자 빌립의 집에 묵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구제사역을 감당할 7명의 일군을 세워졌던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스데반과 빌립이 거기에 속해 있었지요. 스데반의 순교이후 사람들이 흩어져 복음을 전할 때 사마리아에 가서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또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 가서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여 회심하여 세례를 준 뒤 빌립이 정착한 곳이 가이사랴 였습니다. 20년간 가정을 이루고 딸 넷을 두었는데 예언의 은사가 있는 선지자였습니다.

예언의 은사가 있는 한 자매님을 알고 있습니다. 기도 중에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는 특별한 은사 있습니다. 저도 그 자매님을 통해서 도움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시고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대학교수이기도 해서 저에게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부모님들이 정말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고 형제들도 영적인 은사와 깊이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의 가정을 보면 전도자 빌립의 가정이 생각납니다.

우리 주위에 하나님의 큰 사역들을 잘 감당하지만 자녀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사도들 같이 큰 사역을 감당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로서 영적인 영향력이 있어서 자녀 모두를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냈습니다. 빌립은 크리스천 부모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모델을 보여줍니다.

빌립의 가정에 있는 축복이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유대인에서 선지자 아가야가 찾아옵니다.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신의 손발을 묶고는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인들이 이 띠의 주인(바울)을 결박하여 이방인들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이 안타깝고 애타게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도록 말렸습니다.

마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포기하도록 말리는 장면이 연상이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합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여기서 잘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바울은 심령의 매임을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성령께서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말씀하셨다고 경고합니다.

성령께서 바울에게는 예루살렘에 가라고 지시하시고 반면에 사람들을 통해서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금지하시는 걸까요?

아니면 2차 선교여행 때 성령께서 소아시아 선교를 막으시는 것처럼 막으시는데 바울이 자기 고집으로 밀어붙이는 걸까요?

여기서 지시와 금지에 대해서 혼돈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지시)

각 도시에서 바울을 만날 사람들에게 바울에게 있을 환난과 고난을 미리 알려주시지만 금지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간적인 정 때문에 말리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데 인간적인 생각과 정이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지 말라고 막자 “사단으로 물러가라”는 질책을 듣게 되지요. 사단은 인간적인 정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을 찾아가서 형제들의 환영을 받고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납니다.

바울이 선교보고를 하니까 모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대표이고 야고보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자신이 누구냐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느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의식으로 시기하고 질투해서 다윗을 미워했던 사울과 대조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조차도 동역자에게 풍성한 사역의 열매가 있으면 시기하고 질투하고 충격과 상처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기와 주도권을 빼앗길까봐 경계하고 하나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울과 야고보의 모습은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하나님께 온전히 맞추어 졌을 때 동역자의 풍성한 열매를 보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할렐루야!”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단체와 교회를 초월해서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되는 축복이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고민이 생겼습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예수님을 믿고 있는 수만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으로서 율법도 열심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문으로 듣기에는 바울이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모세 율법은 휴지조각이고 할례는 쓸데없는 짓이고 유대 풍습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바울에 대한 반감이 있었습니다. 자칫 공동체에 불씨가 되어서 분열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장로가 제안을 합니다. 복음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바울이 동참하는 것을 보고 “아, 바울도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이구나.”하고 안심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 그리스도인과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침 4명의 사람이 나실인의 서원이 있어서 7일간 결례를 행하게 되었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기로 서원한 사람입니다. 성경에서는 삼손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나실인은 3가지 금기사항을 지킴으로 자신을 구별했습니다. 첫째는 포도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먹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시체를 만지지 않은 것이고 셋째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것입니다. 서원을 일정기간 할 수도 있고 평생 할 수도 있었습니다. 일정기간 서원한 사람은 서원기간을 끝날 때 7일간 결례를 행하면서 그동안 기른 머리털과 함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때 바울이 결례 비용을 대신 지불하고 의식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복음의 본질은 그대로 지키되 문화적인 문제는 절충을 하는 것 이었습니다.


결례 기간 7일이 거의 다 되갈 무렵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시아(소아시아 서부)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고 발끈했습니다.

‘각 도시에서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대적하더니 이제는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려와서 성전을 더럽히다니.’

그래서 대중을 선동해서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어내어서 폭행을 가했습니다.

천부장이 군대를 이끌고 진압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왔던 것입니다.

바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납니다. 그에게 아직 사명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로마와 땅 끝까지 가서 이방인에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바울은 천부장 에게도 요청하여 성난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간증을 합니다.

바울이 이런 어려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심사는 자신의 안전과 안락이 아니라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무릎 쓰고 예루살렘에 왔고 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로마 군대들에 의해 호송되는 이 시점에서도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간증을 합니다.




“주님, 바울이 복음에 매이고 사명에 이끌려서 고난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희에게도 그러한 믿음과 헌신을 주시고 사명의 길을 갈 수 있게 하옵소서.

복음을 위해서 살게 하시고 사명을 위해 죽게 하옵소서.

그러할 때 저희들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며 영원하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교회와 학교와 직장에 영적인 부흥을 주셔서 민족과 세계가 변화되는 놀라운 축복이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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