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소: 석계역 선한이웃병원 예배당
함께한 분들: 김재현,문찬희,박경지,이은혜,이종선,고재홍,하정윤,장한나, 서용배,김효원,이원희,황창현
배상필,조원민,성유미,김영란간사
찬양과 함께 2007면의 첫 월요모임이 선한이웃병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첫 모임인 만큼 올해의 계획들,기대되는 선교병원 사역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모임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서용배이사님의 통통한 
아바이 순대, 석계역주변의 명물 오빠생각의 떡볶이와 튀김

이 배를 채워주었고 김효원순장님의 기타반주의 찬양은 우리들 맘을 따뜻하게 채워주었습니다. 또한 아가페 사역을 위한 기도의 목소리는 응답해 주실 믿음으로 우리를 든든하게 해주었습니다.
올 한해 선한이웃병원을 통한 아가페 사역들을 기대하며 여러 순장님들과 나누며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첫 모임인 만큼!! 함께한 순장님들이 3 팀으로 나눠
윷놀이 배틀이 한바탕 벌어졌습니다.
정신과의 기를 모아 던지기만 하면 윷이요 다시 던지면 상대팀 말을 잡았던 성유미,장한나 순장님
팀에 기여를 해보고자 간절한 마음으로 큰 기합을 넣었지만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었던 무의미한 빽??토를 던지던 조원민 선생님
모를 만들기 위한 그대로 던지기의 진수를 보였던 박경지 순장님.
윷이 이상하다며 굳이 다른 윷을 고집하셨던 배상필 순장님
말 놓기의 또다른 능력을 보였던 이은혜 순장님.
나름대로의 규칙으로 공정한 심사를 하셨던 서용배 이사장님..
모든 순장님들이 풍성한 1등 선물에 대한 승부욕에 넘쳐 삼세판을 한시간동안 열심히 하셨습니다.
풍성한 선물은 쌀 한톨이 10배로 커진 의미심장한 것으로 모두가 탐내하셨습니다.
결국 막판 뒤집기로 배상필 순장님이 속했던 6명 순장님들이 뻥튀기를 차지하셨습니다. 함께 나누면서
올 한해도 주님의 은혜가 그렇게 컸으면 하는 기도를 드려보고 싶었습니다.
다음주 부터는 순모임이 진행됩니다.
리모델링으로 분주한 선한이웃병원에서 기도로 찬양으로 하나님을 높히는 시간이 계속 되오니 동역자님과 함께 오시길 바랍니다.
***** 메세지 ******
하나님은 사랑(agape)이십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고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3:36-40)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둣방 주인 시묜이 외상값을 받으러 갔다가 헛탕을 쳐 화가 나서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교회당 옆을 지나는데 하얀 피부의 벌거숭이 사내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처음엔 외면하고 지나치려고 하는데 웬지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두루마기를 입히고 부축하여 집으로 데려 갔습니다.
아내인 마뜨료나는 구박했습니다. 외상값을 수금하기는 커녕 술에 취해 낯선 사내를 데려와서 없는 살림에 딸린 식구를 데려오는
왔으니 작정을 하고 쫓아낼 듯이 덤벼들었습니다.
"마뜨료나, 당신 마음엔 하나님도 없소." 핀잔에 마음이 찔렸는지 저녁상을 차렸습니다.
그러자 낯선 사내가 빙그레 웃었습니다.
낯선 사내 미하일은 구둣방에서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금방 일에 익숙해지고 구두를 얼마나 잘 만드는지 사방에 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몰려들었습니다. 1년쯤 지났을 무렵 마차 한대가 가게 앞에 멈쳐섰습니다. 황소같은 몸집의 신사가 구둣방에 들어오며 값비싼 독일산 가죽을 내놓으면서 1년이 지나도 모양을 변하지 않는 튼튼한 장화를 주문해왔습니다.
미하일은 신사의 발치수를 잰 후 신사 뒤에 누군가가 있는지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었습니다.
신사가 떠난 후 얼마되지 않아서 그 하인이 헐레벌떡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제 장화는 필요 없어요. 나리께서 집으로 돌아가시던 마차안에서 돌아가셨어요."
미하일이 이 집에 온지 6년이 되었을 때 어느 여인이 쌍둥이 여자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봄 구두를 맞추기 위해서였는데 불쌍하게도 한 여자아이는 한 쪽 다리를 못쓰는 장애아였습니다.
여인은 두 아이의 친 엄마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원래 아이들의 아빠는 태어나기 며칠전에 일하다가 나무에 깔려 죽었고
엄마마저 일주일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엄마가 쓰러지면서 한 아기의 발이 깔려서 그만 불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생후 8주되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기 때문에 동네 회의 결정에 따라 자신이 두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친 자식마저 2살때 세상을 떠나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 두 아이가 없었다면 나 혼자 무슨 재미로 살겠어요? 그러니 얘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요.
얘들은 내게 촛불이나 마찬가지예요."
미하일은 빙긋이 미소를 짓더니 온 몸에서 광채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미하일은 원래 천사였는데 벌을 받아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까 그 쌍둥이의 엄마의 영혼을 거두어 오라는 명령을 받고 갔는데 불쌍해서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빠도 죽고 엄마마저 세상을 떠나면 아기를 키울 사람이 없다고 사정해서 딱해서 그냥 돌아오자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셨습니다. 엄마의 영혼을 거두어 오는 길에 미하일이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면 다시 천사로 돌아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질문은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있는데 자신이 교회옆에 쓰러져 있을 때 시묜이 미하일을 집으로 데려오고 마뜨료나가 저녁식사를 대접하는 것을 보고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둘째 질문은 "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인데 신사가 장화를 맞추러 왔을 때 그 뒤에 죽음의 천사가 서있는 것을 보고 사람에게는 미래를 아는 것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마지막 질문은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인데 여인이 남의 자식을 사랑으로 키우고 눈물을 흘렸을 때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동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있을 때 하나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람은 자기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행복과 의미와 미래는 "하나님의 사랑"에 달려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가장 큰 계명을 두가지로 제시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이것이 율법과 선지서의 요약(summary)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율법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받아서 전해준 것입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백성,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게 하기 위해서 였지요.
구원의 조건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이 축복받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까따로운 교통법규를 만들어 놓고 위반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다가 딱지를 떼는 불량한(?) 교통경찰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신호등이 빨간 불일때 길을 건너라고 하겠습니까?
파란불일때 길을 건너라고 하는 것은 자녀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율법을 주신 것도 축복받은 삶을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축복받는 삶을 사는 비결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명기 6장3절 말씀을 봅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유대인는 쉐마라고 하여 이 말씀을 아침 저녁으로 암송했습니다.
축복의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 있을 때 새는 하늘을 날아갈 때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가장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에게 첫번째 메시지와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죄는 사람의 영혼과 육체, 마음과 관계 모두를 망가뜨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대신에 미움고 무관심으로 마음을 채워놓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값을 지시고 죽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변화되었습니다.
죄인과 창녀와 수 많은 이들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형식만 있고 사랑은 없었던 바리새인들은 책망을 받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대적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를 다시 만나서 질문하셨던 것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입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사랑을 회복하자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은 3년을 수고하여 세워서 이단과 환난을 이긴 훌룡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잃어버리자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복음의 촛대가 옮겨지고 지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새해 계획을 세우고 나름대로 마음의 다짐을 하셨을 줄 압니다.
잘 사는 것도 좋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잘 살게 됩니다.
우리의 결심은 무너지고 계획은 좌절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희미해진 비전을 분명해지고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며 문제를 넘어서 소망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
누가복음10절25절 이하에는 본문과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이 율법사에게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
율법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율법사는 다시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아마도 그는 신학적 논변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거룩한 사람인지 과시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여리고로 가던 길에 강도를 만나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폭행을 당해서 거반 죽게되었습니다.
쓰러져 있는 그의 옆을 제사장과 레위인이 지나갔지만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사람취급을 하지도 않는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를 나귀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려가서 치료하고 정성껏 돌봐주었습니다.
"누가 그의 이웃이냐?"라고 예수님이 물으시자 대답했습니다.
"자비(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너도 가서 그와 같이 하라."
무슨 말입니까?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하고 교회나 아가페 모임에 빠지지 않는다고 해서
사역자로 열심히 살아간다고 해서 저절로 이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가 되고 높은 지위에 승진하거나 유명인사가 된다고 해서
그리고 옆 집에 살거나 같은 직장에 있다고 해서 이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아무런 관계도 비슷한 점도 없다고 하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사랑을 베푼다면 그가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사랑을 베풀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행동이면서 또한 모든 것에 의미과 생명을 줍니다.
우리가 천사의 말을 하고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설교를 하고 성경공부 인도에 탁월한 순장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괭과리 소리처럼 의미없는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합니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노벨상을 수상하고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계시를 받아 말하는 예언자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계 곳곳에 선교병원을 세우고 교회를 개척하고 수많은 선교사와 사역자를 파송하여
구름떼같이 허다한 사람이 주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있더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여 심지어 순교의 재물로 드려진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는 변덕스럽고 쉽게 분노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죄의 유혹에 약합니다.
우리의 결심은 무너지고 좌절로 눈물 짓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고 영원합니다.
오늘 최첨단의 지식은 몇년후면 휴지통으로 들어갈 것이고
주님이 오시면 우리의 은사와 재물도 무용지물이 되겠지만
사랑은 언제까지 가장 값진 보석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 제일 소중하고 귀합니다.
사랑할 때 비로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agape)이십니다.
" 주님, 올 한해 아니 영원한 시간을 사랑가운데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환자와 동료,선배와 후배, 믿는 자와 불신자, 한국과 세계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나아가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