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선한이웃병원 예배실
참석자: 문찬희,박경지,이경희 (경의 05),정신혜(이대06)장한나(경희05),박성현,김효원,이정선,
김재현,조원민,배상필.장한나,김영란간사
오랜만에 월요모임을 방문한 정선순장님과 파...국 스틴트를 마치고온 신혜순장.... 모두가 반가운 얼굴들
이고 이곳에서 자주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순장님들 이었기에 함께 마음 따뜻한 모임을 갖을 수 있었습니다.
순모임에서는 '정서적 필요를 돌보는 삶'이란 책의
8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을 위하여
를 함께 공부했습니다. 우리들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법을 함께 알아가면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육체적,정신적 질병으로 힘들어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다가가 낮아져 있는 자존감을 높혀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가페 홈피에는 선한이웃병원을 위한
모금운동 체온계
가 쑤~~욱 올라가고 있어 매서운 바람의 추운 겨울이 춥지만은 않습니다. 많은 순장님들과 아가페다운들이 선한이웃병원을 뜨겁게 만들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지난번에는 대 계명(Great commendment)-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대계명이 예배와 섬김(사역)이라면 오늘 본문의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은 전도와 교제와 훈련입니다.
예배가 없는 삶, 사랑이 없는 사역은 무의미하고 열매가 없습니다.
삶과 사역이 없는 신앙은 영향력이 없습니다.
예배와 사역, 전도와 교제와 훈련-
5가지 영역이 균형이 있어야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대 계명이 신앙의 본질적인 면이라면
지상명령은 신앙의 실존적인 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의 사역 초기에 아주 탁월한 복음 전도자 한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술과 마약에 빠져 있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뛰어난 언변과 열정으로 수많은 청소년들이 회심하였습니다. 빌리 그래함 집회보다 더 많은 군중이 운집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타임지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내전 지역에 흑인 엄마와 아기의 그림이었습니다.
기근과 내전이 휩쓸고 간 대지는 황량하여 거북이 등딱지처럼 갈라져 있었습니다.
엄마의 젖가슴은 말라 비틀어져 있고 모든 것을 체념 한 듯 합니다.
뼈만 앙상한 아기는 나오지 않는 젖을 빨다가 지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대머리 독수리 한 마리가 아기가 죽으면 잡아먹으려고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이 사진은 전 세계에 파란을 일으켰고 그해 퓰리쳐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사진을 보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악에 대해 침묵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빌리 그래함에게 자신의 고민을 설득력 있게 얘기 했습니다.
빌리 그래함도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는 도서관으로 가서 해답을 찾으려고 열심히 책과 자료를 찾았습니다.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하고 사역을 중단하고는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반면에 빌리 그래함은 산에 가서 부르짖었습니다. 빌리 그래함은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고 모든 문제의 해답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더 열정적이고 영향력 있는 복음 전도자로 변화되어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시편 73편에 보면 악한 사람이 형통하고 잘 되는 것을 보고 혼란에 빠집니다. 성전에 들어갔을 때 ‘악인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요.
우리도 세상의 부조리를 보면서 혼란과 고민에 빠집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의 지식과 지혜로 해답을 얻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혜와 지식은 필요하지만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해답을 주실 수 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굶주림과 질병과 전쟁과 분쟁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모르는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문명사회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정보화 사회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고 있는 듯하지만 공해와 빈부의 차이, 인종 차별, 이혼과 가정 해체, 교육의 붕괴, 자원 고갈, AIDS와 신종 질병, 자살과 낙태, 핵 문제, 범죄 등은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다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죽음과 죄, 허무와 인생목적에 대한 고민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마4:17)
예수님의 메시지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그분이 주인이 되시는 곳, 하나님의 비전과 뜻이 이루어지는 영역, 그의 백성의 공동체가 있는 나라가 사역 목적이었습니다.
그 분이 가는 곳마다 죄로 인해 망가지고 상하고 뒤틀린 모든 것들이 다시 회복되고 자유케 되고 고쳐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만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십니다.
죄와 사망과 질병과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구원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분이 세상을 만드셨고 죄와 부조리에 대한 모든 댓가를 치루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나라는 점점 성장하여 온 열방과 사회 영역 가운데 퍼져서 주님 오시는 날 완성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무슨 일부터 해야 할까요?
이 땅에 단 한명의 선교사로 파송되셨던 예수님은 온전한 모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4:23)
주님은 할 일이 많으셨지만 3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천국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에 초청하셨습니다.(preaching) 그들을 가르치셔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성장하게 하셨습니다(teaching). 치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healing).
그 이후 12제자를 보내고(마10장) 70제자(눅10장)를 파송하시면서 똑 같은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이 일을 맡기셨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르치기를 힘써야 하고 항상 배우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병을 고치고 계십니다.
의료를 통해서 치유하는 것도 성령의 사역입니다.
모든 나라와 사회영역 가운데 그분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통해서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3년간의 사역을 마무리 하면서 제자들에게 위임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11제자에게 명령하십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승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역자로 부름 받았다.
특정 교회나 단체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전통은 시대가 가면서 변질되었습니다.
4세기 초대 교부 터툴리안에 의해서 성직자와 평신도(lay person)으로 구분되면서
성경 해석과 사역은 성직자들이 독점하였고 평신도는 구경꾼으로 전락했습니다.
교회는 급격히 약해지고 선교는 중단되었습니다. 면죄부를 팔정도 까지 말씀에서 벗어나 타락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구텐베르크 인쇄술에 힘입어 성경이 출판되어 전 유럽에 보급되었습니다. 선교의 불길이 다시 타올랐습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첫 번째 종교개혁을 통해 성경이 평신도에게 주어졌다면
두 번째 종교개혁를 통해 사역이 평신도의 손에 주어지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대부분이 평신도입니다.
평신도 사역자를 세우지 않으면 세계 복음화는 불가능합니다.
교회는 많지만 세상이 타락한 것은 평신도들이 직장과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대에 목회자와 평신도를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십니다.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는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역할에 차이가 있다.
직장 사역자 연구소장인 방 선기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재미있게 표현을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목회자가 주연이고 평신도가 조연이다.
반면에 세상에서는 평신도가 주연이고 목회자가 조연이다.”
경쟁 관계가 아니라 동역의 관계입니다. 모두에게 영적인 부흥과 무장이 필요합니다.
모든 족속에게 가라
100년 전만 해도 한국 땅에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질병과 가난과 압제 가운데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누가 100년 앞을 내다보면서 세계 12위 경제대국이 되고 정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세계에서 2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되리라 꿈이라도 꾸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아니었으면 벌써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축복을 허락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모든 족속에게 축복을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들은 선민의식에 도취되어 그리스도를 배척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았지요.
하나님은 주님을 다시 살리셨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일을 부탁하셨습니다.
21세기에 바로 이 일을 위해서 한국교회와 민족을 준비하셨다고 믿습니다.
민족과 나라의 모든 지역과 영역들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똑같은 마음으로 열방을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더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고 기도와 후원을 해야 합니다.
모두가 선교사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제자를 삼으라
구원은 은혜로 값없이 받습니다. 댓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받으면 됩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댓가가 지불되었습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탄의 권세와 저주에서 벗어나 천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천국행 티켓 한 장을 주시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게 위해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Saviour)로 인정하면서 주님(LORD)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님의 소유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스승으로 따르는 데는 댓가가 필요합니다.
포기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채워집니다.
세례를 주라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입니다.
그의 몸인 교회와도 연합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교회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개인으로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혼자 성경보고 기도하는 것만으로 풍성한 삶을 살기 어렵습니다.
지체들과 교제할 때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도움을 받아 성장하게 됩니다.
공동체를 떠나서 성장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모닥불에서 떼어진 장작개비, 포도나무에서 잘려져 나간 가지와도 같습니다.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의 성장단계를 지식, 관점, 훈련, 사역으로 구분했습니다.
처음엔 말씀을 지식적으로 알아가고 다음에는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뀌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체질화되고 사역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게 됩니다.
여호수아에게 ‘율법 책을 떠나지 말고 주야로 묵상하여 지켜 행하면 네 길이 형통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수1:8) 기억하십니까? 말씀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씀에서 시작되고 순종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비결입니다.
개인과 공동체와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느니라.
요셉이 어떻게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을까요? 성실하고 일을 열심히 해서일까요? 물론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그러한 노예는 이집트에 수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셔서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기근으로 온 천하가 멸망되는 것을 구원할 수 있었지요.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영성과 전문성을 겸비해야 영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