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제목: 마태복음 – 헬라어 본문에는 “카타 마타이온”(마태에 의한)이란 표제어가 붙어 있는데 후에 그리스도에 대한 “기쁜 소식”이란 의미를 가진 “유앙겔리온”(복음)이란 말이 첨가됨.
저자: 마태(야훼의 선물)로 예수의 사역을 직접 목격한 12제자 중 하나로 가버나움의 세관원이었으며, 문서 정리에 능숙하였음.
기록연대: 주후 50~70년(85-90) 경으로 초대 교인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이후, 예루살렘이 멸망이 이루어지기 이전으로 추정.
주제(<?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내용 구성: 복음서는 단순히 예수의 행적을 시간 순으로 정리한 전기나 어록이 아니다. 후대인들에게 신앙의 대상인 예수님에 대한 교훈과 신앙 고백의 모본을 보여 주기 위해 기자들이 특별한 관점에서 예수의 생애와 교훈을 기록한 것이다. 물론 이 기록들은 각 기자들의 용의주도한 노력과 더불어 성령의 영감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복음서들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및 그의 사역에 대한 완벽한 계시를 준다. 한편 4복음서 기자가 각각 나름대로의 독특한 관점에서 예수를 제시하고 있는바, 특히 마태는 매우 특이한 원칙으로 복음서를 전개하고 있다. 즉 마태는 모세오경, 시편 5권 분류 등 구약 성경의 주류인 문서 5분법을 따라 서론(1,2장), 결론(26:3-28:20)을 제외한 전체 내용을 5부로 나누고 있다. 이와 같이 마태는 전체 내용을 5분 편집하면서 비교적 시간적 선후 문제보다 주제별 구성 원칙에 더 충실하였다. 따라서 독자는 마태복음을 읽어 나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시간적 전개보다 마태가 각 부분에서 제시하고자 했던 예수의 삶의 의미 문제에 더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본서의 역사적 신빙성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우선점의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편 5분법으로 나눈 마태복음의 각 부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다룬 기사 부분과 주제별 관점에서 연결된 예수님의 강화 두 부분이 합쳐져서 한 부를 형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5분법에 따라 구성된 각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편 이 도표는 구성 방법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뒤에 나오는 개요는 마태복음 전체의 내용전개를 중심으로 분해한 것이다.
서론: 예수님의 탄생(1:1– 2:23)
1부: 기사 – 세례 요한 및 공생애 초기 사역(3:1 – 4:25)
강화 – 산상수훈(5:1– 7:29)
2부: 기사 – 각종 이적과 12제자 임명(8:1 – 9:38)
강화 – 제자의 삶, 선교와 순교(10:1– 42)
3부: 기사 – 예수와 세례 요한의 운명, 안식일 논쟁(11:1 – 12:50)
강화 – 천국의 비유(13:1– 53)
4부: 기사 – 예수와 세상 지도자들의 대립(13:54 – 17:27)
강화 – 하늘나라 시민의 생활(18:1– 19:2)
5부: 기사 – 각종 논쟁과 수난 예언(19:3 – 23:39)
강화 – 감람산 강화(24:1– 26:5)
결론: 예수의 수난과 부활(26:6 – 28:20)
핵심 단어: 왕이신 예수. 마태는 예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유대 민족에게 알리기 위해 본서를 기록하였다. 그는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구약 성경을 반복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이스라엘에게 예언된 메시야임을 강조하였다. 특히 이 왕의 출현에 대한 모든 기사(이적적인 탄생, 탄생장소, 애굽으로의 피난, 세례를 받으심, 광야에서의 시험 등)는 이 주제에 잘 부합된다. 이와 같이 예수는 오랫동안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되었던 메시야에 대한 약속의 성취이며 정점인 것이다.
핵심장: 12장 본서의 전환점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는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과 그의 권세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가 아닌 사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본 장부터 시작된다. 예수는 이때부터 사역의 방향을 바꾸어 비유로 가르치시며 제자들에게는 더 관심을 보이시면서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본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예수가 약속된 메시야적 왕이심이 강조되어 있다(1:23; 2:2, 6; 3:17; 4:15-17; 21:5, 9; 22:44, 45; 26:64; 27:11, 27-37). 특히 그는 정통 왕족인 다윗 가계 출신(1:1)으로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를 이루려’ 하시는 계시 완성자이심이 나타나 있다. 또한 다른 복음서에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천국’이란 용어가 본서에서는 32회나 나타남으로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을 130여 회나 인용하여 예수가 메시야 자격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예수를 인자라고 표현함으로(8:20; 12:8, 40; 25:31; 26:64) 그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계신 분이심을 드러냈다. 이와 같이 예수는 여호와의 종(12:17-21)으로서 지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분임을 마태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제 1 장
마태복음의 저자가 먼저 그리스도의 족보와 출생, 그의 조상과 그가 세상에 오신 방식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은 그가 참으로 약속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으로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예언되었기 때문이었다. 예수가 바로 예언된 메시야라는 사실이 여기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즉 그 내용을 보면
I. 그의 족보가 아브라함에서부터 14대씩 3번, 모두 42대로 되어 있으며(1-17),
II. 그가 동정녀에게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데 필요한 만큼 그의 탄생에 대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18-25)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마태의 족보는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함으로써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후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누가의 족보는(눅3:23-38) 예수의 조상을 인류의 조상인 아담, 그리고 하나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그리스도가 우주의 구원자 되심을 강조한다. 이것은 마태복음이 유대인, 누가복음이 이방인을 위해서 기록되었다는 일반적인 견해와 일치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 함은 그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왕통을 받고 오신 메시야이심을 말한다. 예수의 족보에는 5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라합과 룻은 이방인, 다말과 밧세바와 마리아는 유대인이다. 라합은 기생이었고(약2:25), 다말과 밧세바는 간음을 했던 여인이었으며(창38:24; 삼하11:2-5), 룻은 보아스와의 관계에서(룻3:5이하), 그리고 마리아는 결혼 전에 수태했다는 점에서 모두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거룩하신 예수의 족보가 이렇게 문제성 있는 여인들의 피로 얼룩져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1.유대인의 배타적인 인종차별주의와 2.죄악의 권세를 넘어서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한편 마태와 누가가 예수의 족보를 기록하는데, 이를 비교해보면 1.마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하향식으로, 누가는 상향식으로 기록하였다. 2.그리스도를 왕으로 표현한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왕통을 제시하나,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를 표현한 누가는 첫 사람 아담에까지 소급하였다. 3.마태는 책의 서두에 이를 제시하나, 누가는 공생애 시작과 관련시켜서 비로소 족보를 언급하였다. 4.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서로 일치하나, 다윗부터 요셉까지는 스알디엘과 스룹바벨 외에는 모든 이름이 일치하지 않으며, 인원수도 본서에는 24명이나, 누가복음에는 34명에 달한다. 이 난제에 대하여는 해석이 엇갈린다. 혹자는 마태는 예수의 족보 중 몇 대를 건너뛰어 가면서라도 왕들을 중심으로 기록하였고, 누가는 될 수 있는 대로 부자간의 순서대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어떤 이들은 주장하기를 마태는 요셉의 조상들을 기록하였고, 누가는 마리아의 조상들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본서에는 요셉의 윗대가 야곱이나(16절) 누가복음에는 헬리로(눅3:23)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야곱은 요셉의 아버지이고, 헬리는 마리아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이 설을 취한다. 요셉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가계이고, 마리아는 다윗의 다른 아들 나단의 후손으로 누가복음은 이 마리아의 가계도를 보여주는 것이며, 결국은 둘 다 다윗의 혈통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예수를 유대인의 왕으로 표현한 본서에서는 예수께서 다윗왕가의 계통을 이어 태어나신 사실을 먼저 밝히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혈통을 중시하고 족보를 숭상하던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이 그토록 오랫동안 대망되어 오던 다윗 집안의 한 위대한 왕, 즉 메시야이심을 확신시키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예수님의 첫 조상으로 선택하신 이유는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메시야를 세상에 보내시려는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라고 말씀하신 씨는 곧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신 것입니다(갈3:16). 이처럼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조상으로 선택받은 이유는 그의 씨로부터 메시야를 탄생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창12:3; 22:18). 성경에서는 왜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만이 아니라 다윗을 등장시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까?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다윗과 연결시키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이 다윗의 왕권을 계승하는데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 9:6절 말씀을 보면 장차 오실 메시야는 평강의 왕이신데 다윗의 위에 앉아 그 나라를 굳게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은 다윗의 왕권을 계승할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시는 분입니다. 왕은 그의 백성들을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해야 할 그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16절) 누가는 본서와 다르게 요셉을 헬리의 아들로 기록하였다. 이 난제를 해결하는데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맛단의 두 아들이 있는데 형은 야곱이고, 동생은 헬리라는 주장이다. 마리아는 헬리의 외동딸이고,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었는데 4촌인 마리아와 결혼함으로써 야곱의 아들인 동시에 헬리의(장인) 아들도 된다는 주장이다. 2. 야곱은 후손이 없이 죽었고, 헬리는 관습에 따라 형수와 결혼하여(22:24-26) 요셉을 낳았는데 형의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이후부터 요셉을 야곱의 아들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다른 여러 해석이 있지만 대부분 전자의 설에 입각하여 누가의 족보가 실제적인 것이고 마태의 것은 왕위계승을 주로 한 법적인 관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차이점이 생기게 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열 네대 14대의 구조에 맞추기 위하여 동일인물인 여고냐(11,12)가 두 번 계수되었다. 또 같은 목적에서 요람과 웃시야(8) 사이의 세 명(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대상3:11-12)을 족보에서 제외시켰다. 14대 구조로 족보를 구성한 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들이 있다. 1.유대인의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쉽게 암기토록 하기 위해서다. 2.다윗이라는 이름을 구성하는 세개의 자음(달렛, 와우, 달렛) 가운데 달렛은 4를, 와우는 6을 가리키므로 합하면 14, 즉 다윗을 나타낸다. 따라서 14대란 말은 그리스도가 다윗 왕통을 받고 오셨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3.14는 7이란 완전수의 두 배이므로 예수의 족보에 완전수를 관련시키려 한 것이다.
18 정혼하고 유대인은 정혼기간에는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의 약혼보다 훨씬 더 엄숙한 관계였고, 이혼 증서를 써주지 않고는 파혼할 수 없는 사실상의 기혼관계였다. 그러므로 신22:23,24에는 약혼 상태에 있는 여인을 ‘아내’라고 부르고 있는데 마태도 결혼하기 전의 요셉과 마리아에게 ‘남편’과 ‘아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18 성령으로 잉태 현대인들은 과학을 최고의 판단의 근거로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녀간의 관계없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과학이 항상 진리인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는 옳다고 생각했던 법칙들이 현대에 뒤집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과학을 초월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합니다(히11:6).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의 모친의 본체를 나누어 가져 인성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성품을 가지기는 하셨지만 인성의 부패와 타락을 피할 뿐만 아니라 죄악 중에 잉태되고 조성되지 않으시기 위하여 일반적인 출생방식과는 다르게 잉태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으로 인한 잉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본체가 되셨습니다.
19 요셉은 의로운 사람 의로운 사람으로서 요셉은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정혼한 처녀가 임신을 했다는 것은 돌로 맞아 죽을 행위(신22:23,24)이었지만,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이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요셉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조용히 해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약혼했던 여자가 남자로부터 이혼증서를 받고 파혼 당했는데 수개월 후에 배가 불러오고 출산을 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율법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해결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마리아를 사랑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의 뱃속의 아이가 누구의 아이건 상관하지 않고 ‘내가 기르겠다.’는 각오를 하였다면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즉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그녀를 데려와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인간적 율법의 의’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율법을 잘 준행했던 바리새인들이 율법이 올무가 되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20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이런 방법으로 말씀하시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뜻이 확고하게 드러난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영적 아비들의 충고나 선한 양심, 선한 동기와 상황들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요셉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즉각 순종하였습니다.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이루려 하심이니 본서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표현형식입니다. 구약에 예언된 사건들이 신약에서 성취되었다는 사실은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강력한 증거이고, 또한 성경은 세미한 부분까지도 정확하다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한편 우리는 다른 공관복음서의 저자보다도 이런 형식의 글을 가장 많이 사용함으로써(직.간접 100회 이상) 구약의 메시야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시키려는 마태의 강한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25 동침치 아니하더니 이 귀절은 눅1:34과 함께 마리아는 평생토록 처녀성을 간직하였다는 소위 카톨릭의 마리아 종신 처녀설의 참고 구절이 됩니다. 그러나 본문이 보여주듯 이 부분은 요셉이 예수의 탄생 전까지 마리아와 부부관계를 스스로 금하여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의 한 증인이 된다는 것뿐이지 마리아의 종신 처녀설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공관 복음서 전체를 볼 때 예수님에게는 친동생들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13:55,56; 막6:3; 눅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