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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4장 - 노제현 선생님^^

아가페 2010-05-12 (수) 16:45 15년전 4409  

마태복음 (4장)

1. 그리스도께서 당한 시험:1-11

2.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심:12-17

3. 그리스도께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심:18-22

4. 그리스도의 병 고치심: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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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와 광야에서 사 십일 동안 성령에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귀는 디아볼로스라고 하는데 반대자 참소하는 자 대적자란 뜻을 가지는데 성경에서 마귀는 악한 천사의 우두머리로 언급되는데 사단(1:6; 12:26)이라고도 하며, 바알세불(12:24), 옛 뱀(12:9), 공중권세 잡은 자(2:2)라고도 합니다. 또 이 말은 구멍을 낸다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비난하여 구멍을 낸다'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귀신은다이모니온으로 마귀의 부하들인 악령을 가리킵니다. 이 말의 어원은 헬라의 신보다는 좀 낮은 신을 가리키는 데서 나왔는데 마귀의 지배를 받는 그 부하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귀신이란 말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보다 지위가 훨씬 낮으며 마귀의 지배를 받고 활동하는 악령들을 말합니다. 성경에 언급된 사탄이 하는 일은 대략 세 가지가 되는데 (1)사탄은 시험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사탄의 가장 큰 역사는 사람을 시험하는 일입니다. 1:14절 말씀에서 '오직 각 사람이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시험이 이처럼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고 말씀해 주지만 욕심이니 죄니 사망이니 하는 것들을 주장하는 자는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2)사탄은 참소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참소란 우리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 고자질하는 일을 말합니다. 사탄이 성도를 참소하는 모습이 욥기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2:1-6).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 이 같은 사탄의 참소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이 우리의 보혜사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는 대제사장의 직분을 그의 영원한 속죄 제물인 자신의 피를 가지고 담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사탄은 인간의 생명을 노략질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10:10). 도적이란 마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마귀란 자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귀를 이용하시어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심판 사역을 아울러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귀의 역사를 통해서 죄인의 구원에 선히 사용하시고 악인의 심판에 유용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에란 예수님이 방금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때인데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성령 충만한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원단 금식이나 수련회, 철야기도를 다녀온 후에 시험에 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큰 특권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충만한 성도들도 시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의 경우 셋째 하늘에 가볼 정도로 받은 계시와 은혜가 많았지만 육체의 가시, 즉 사단의 사자를 주셨는데 그것은 자고 하지 않게 하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께서 그 자신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어 보이기 시작할 바로 그 때에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해 죄를 짓도록 함으로써 영원히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통째로 가로막기 위해서는 아예 사역을 시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마귀도 알았기 때문이겠지요.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먼저 히 2:18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마귀는 세상의 임금으로 자기 멋대로 모든 사람을 시험합니다. 이 세상에는 이 마귀의 시험을 당해 낼 사람이 없으며 이길 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은 인류는 다 죄인으로 마귀의 종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려면 시험을 승리한 어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의 시험을 당해야 하는 우리로 하여금 마귀의 시험을 이기게 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자신이 스스로 시험을 당하시고 이기신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주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체험하신 분이시며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므로 우리가 당하는 시험을 이해하고 또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탄의 시험을 당할 때에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주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4:15-16). 다음에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이유는 우리로 마귀의 시험을 대적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모든 시험을 온전히 이기셔야 했습니다. 죄를 이기시고 시험을 이기시고 사망 권세를 이기셔야 했습니다. 그래야 우리를 마귀의 모든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생명으로 승리를 얻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태어나시는 그 순간부터 마귀와의 피나는 투쟁의 연속이었으며, 그는 평생을 마귀와의 투쟁과 십자가의 고난으로 구세주로서의 맡은 사명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우리의 시험을 도우실 위대한 분이 우리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의 도우심은 우리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시험 받을 즈음에 피할 길을 열어 주십니다(고전 10:13). 이제 우리는 우리를 시험하는 자인 마귀를 대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귀를 이기신 자가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로 이기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하셨습니다( 4:7). 우리는 이제 그 어떤 사탄의 시험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주님의 말씀만 따르면 이기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 우리로 이기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험이 있었던 장소는 광야였는데, 광야는 적막하고 외로운 곳으로 하나님과 대면하고 훈련 받는 장소로 곧잘 쓰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인도자가 되기 전에 40년간 광야에서 훈련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도 홍해를 건넌 후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생활하며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금식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지면서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성경에서 금식은 경건한 신앙 행위로 혹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표시로 간주되었습니다(16:29). 특별히 고통 중에 참회할 때(삼상7:6), 고인에 대한 슬픔의 표시로(1:4), 절박하고 간절한 요청(기도)을 위해(삼하12:16), 하나님 앞에서 성직을 수행할 때(34:28) 금식을 시행하였습니다. 이때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주님께만 의지하겠다는 신앙 자세로 행하는 금식만이 참된 금식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58:6). 예수님께서도 마귀에게 시험 받기 전에 40일을 금식하셨는데 이런 예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 시내 산에서(34:28), 엘리야가 40주야를 주린 채 호렙 산에 이르렀던 기간과 일치(왕상19:8)하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의 방랑생활(8:2,3)과도 연결됩니다.

마귀는 세 가지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먼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식욕, 그것도 40 일을 금식한 후 극한 상황에 있을 때, 먹는 것에 대한 것이고, 그리고 명예욕과 권력욕을 자극하는 시험입니다. 먼저 첫 번째 시험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가정합니다. 이미 3장에서 보았듯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후 성령이 임하시고 하늘로부터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로 하나님의 아들임이 확증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마귀는 예수님의 확신을 흔들어 보려는 계획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데, 간교한 뱀이 하와에게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는 말로 유혹한 것과 비슷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신명기 8:3의 말씀을 인용하여 물리쳤습니다. 우리들은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이 말씀을 영적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말은 단순히 인간의 영적 생명에만 관계된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육체적 생명에까지 관계되는 말입니다. 즉 사람의 육체적 생명을 영위하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빵이 필요하지만 설혹 빵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신다면 만나처럼당신의 입으로 명하여 내시는 어떤 것으로도 충분히 그 생명을 유지 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사람이 바라고 소망할 것이 무엇인지를 교훈해 주는 구절입니다. 즉 매일 매 순간의 식량까지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마귀도 시편91:11,12절의 하나님 말씀을 인용하여 유혹합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계속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한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신명기 6:16절 말씀을 인용하여 물리쳤습니다. 세 번째로 마귀는 천하 만국을 주겠다며 자신에게 경배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천하 만국의 주인이 아니고 자기 마음대로 그것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이런 마귀에게사단아 물러가라고 예수님은 결정타를 날립니다. 이 싸움의 결말이 11절에 서술되어 있는데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님의 수종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에 비추어 시험에 대하여 알아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하는 이유는 1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르기 때문에(5:17), 2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요일2:15-17), 3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기 때문에(1:13-15), 4악하고 잘못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2:20), 5세상 지위와 권세에 대한 과도한 야망 때문에(10:35-37), 6박해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16:1-2), 7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큰 재물과 부요함을 지나치게 의지하기 때문에(19:16-24; 10:17-30; 12:16-21; 딤전6:9-10), 8세상에 대한 염려 때문에(13:22), 9어두운 생활을 하며 악행을 즐겨하기 때문에(2:12-15), 10음욕 때문에(5:1-20; 6:24-29; 7:1-27; 9:13,15; 7:26; 5:29-30), 11우상 숭배자들을 가까이 하기 때문에(34:12, 14-16) 입니다. 그러면 시험을 이기는 비결은 1인내해야 합니다. 시험 앞에서 무릎 꿇어서는 안됩니다. 시험을 통해 우리를 더욱 온전케 하시며 영화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바라고 기쁘게 여기며 참아 견뎌내야 합니다(1:2-4, 12), 2피해야 합니다. 유혹이 왔을 때 그 유혹의 상대와 타협하거나 맞서서 호기를 부리기보다 요셉처럼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입니다(39:10). 3대적해야 합니다. 마귀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인간의 영혼을 사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 사탄의 공격에 굳세게 대적해야 합니다(벧전5:8-9). 4물론 사탄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6:11-17).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고전10:13).

마태복음4-2(12-25)

12절에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갈릴리로 가시기까지 요1:35-3:36을 보면 약 1년간 유대지방을 돌며 전도하신 것을 알 수 있는데, 공관복음에는 이 사실을 언급하고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공관복음의 저자들은 갈릴리 전도를 예수님 사역의 본격적인 출발로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복음서 기자 중 마태만이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가셨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앗수르의 침략자들에게 짓밟혀 황폐케 된 지역에 큰 빛이 비취리라는 이사야의 예언(9:1-7)이 성취되었음을 유대인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1:43-3:27에 의하면 세례 요한의 투옥은 예수께서 시험을 받은 직후 적어도 1년 이내에는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사렛을 떠난 이유는 마태복음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누가복음4:16-30에는 나사렛 주민들이 예수를 심하게 배척했기 때문에 가버나움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의 서북쪽에 있는 항구도시로 다마스커스에서 지중해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어업과 경제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따로 거처를 가지고 있었거나 베드로의 집에 머물렀으리라는 추측이 있습니다.

이사야9:1,2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기록되어있는데, 멸시를 당케 했다는 것은 아람왕 벤하닷에 의한 1차 포로시기(왕상15:20), 그리고 보다 극심했던 이스라엘왕 베가(주전736-730) 때에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이 침략하여 지배하였다가(왕하15:29) 다시금 자유케 된 사건을 말합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란 하나님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을 의미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란 영적 사망(8:22, 15:24)의 주관 하에 있는 사람들이란 의미입니다.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파 사역이 이곳에서 처음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빛이 비취었다는 것은 영생으로 인도하는 복음의 진리가 왔다는 말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예수님의 외침도 세례 요한과 다르지 않습니다.

18절부터는 4명의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1:35부터 기록된 내용은 세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였던 두 명을 예수께 소개하는 장면이 나오고, 그 중 하나인 안드레는 자기 형제 베드로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하여 예수님께 데려오니 예수님께서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베드로)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고기잡이를 하고 있던 베드로 형제를 먼저 부르시고, 아버지와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던 세베대의 아들들을 부르시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록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그것과 다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성경학자들은 요한복음의 기록은 일반적인 부르심을 말하고 있으며,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 가운데 특별히 사도로 부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즉 요한복음의 기록이 먼저 일어난 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무리 중에 하나가 되었고,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다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사도로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누가복음 4장에 보면 가버나움에서 전도하시던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갔더니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있었는데, 예수님이 고쳐주신 기록이 나오고 난 후 5장에서 베드로와 제자들을 바닷가에서 부르신 장면이 나옵니다.

우선 제자들이 부름을 받은 장소는 자신들의 생업의 현장인 갈릴리 호수의 배에서였습니다. 즉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부들이 그렀듯 그들은 가난했을 것이고(다른 의견도 있음) 무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밤이 맞도록 고기잡이를 했던 것으로 보아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예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부름을 듣고 좌고우면 하지 않고 즉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리스도를 따랐습니다. 그리스도께 부름을 받은 자들의 특성은 1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자입니다. 일사가 백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2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하고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자입니다. 신뢰하지 않는 대상에게 100% 순종할 수 없습니다. 3세상의 것을 버릴 술 하는 자(14:33)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제가 학생일 때, 유정희 간사님이 고대를 맡으셨는데, 그 분은 떠날 준비, 버릴 준비, 죽을 준비가 된 삶을 사는 것이 제자의 삶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했습니다. 당시의 교육은 지식의 전달만을 의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도제처럼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추종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접미사 ~an을 씁니다. 그러므로 Christian이란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사람이란 뜻이지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 받고 구원을 얻는다고 일고 있습니다. 혹시 뱀파이어 크리스찬이란 말을 아세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고 단지 구원은 받고 싶어 예수님의 피를 조금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랍니다. 비슷한 말로 값싼 은혜라는 말도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제자화 훈련이 교회마다 화두가 되어있습니다. 제자가 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가능한가? 성경과 대부분의 학자들의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크리스찬은 누구나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헌신도와 사역하는 시간의(전임 대 비전임)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목사님처럼 설교하고 전도하는 일만 사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과 속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입니다. 폴 스티븐스 목사님을 비롯한 평신도신학을 전공하는 분들은 우리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역이라고 합니다. 즉 우리가 오늘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주사를 놓고 한 것을 예수님과 함께(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마음으로) 했다면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일(사역)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가르치시고(teaching), 전파하시며(preaching) 모든 병과(disease) 모든 약한 것(sickness) 고치는(healing)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병 고침은 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공개적이고, 즉각적이며 완전하게 행해진 이적이었습니다. C.S.루이스는 기적이란 그것이 모순이거나 터무니없는 사건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연이 그 자체의 자원만으로는 그 일을 만들 수 없다는 의미이다.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그에게 나온 모든 환자들은 고침을 받았고,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이심을 증명하는 한 표시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가 행하시는 이 표적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11:4,5; 3:2; 5:36). 병 고침의 이적은 그의 교훈이 신실한 말씀임을 입증하였고, 그의 가르침이 모두 받아 들일만한 가치가 있음을 증면하고 있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 육체적인 질병을 치유하신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며, 영적인 병을 치유하는 것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복음전파에 참여하는 4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베드로 같이 전적으로 복음 전하는 일만 하고 생업을 가지지 않는 100% 후원으로 사는 사람, 두 번째로 바울처럼 전적으로 복음전하는 일을 하지만 자신의 쓸 것 정도는 생업(Tent maker, 자비량)을 가지고 일부 후원으로 사는 사람, 세 번째로 바울과 동역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18:2-4) 같이 생업을 위주로 하지만 복음전파에도 상당부분 간여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두아디라의 자주 장사 루디아(16:14,15)같이 전적으로 생업에 종사하며 전도자들의 쓸 것을 후원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도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은 전적으로 복음전파하는 일에 전념합니다. 세상 염려로 마음이 나누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겠지요. 혹 직업으로 목사나 선교사를 택한 사람이 있다면 삯군(10:12,13)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를 두고 따랐다는 것은 가족을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고 예수님과 복음전파 보다 우선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으면 좋겠습니다. 즉 하나님 한 분만을 절대적으로 받들고 따르는 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상대화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그대로 믿고 진실히 전하고 행할 때 능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적이 늘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유대인은 이적을 구하고(고전1:22)라고 하면서 이적만을 구하는 이적우선주의를 경계하였습니다. 또 이런 이적은 하나님께서 특정한 목적으로 특정한 사람에게 허락하신 능력(은사)입니다. 그리고 이적을 나타내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이며,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지 인간의 유익을 위한 것이 우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영혼 구원과 자녀들과의 친밀한 교제의 회복이 병고침이나 물질적인 풍요로움 등 보다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치유사역이 나온 김에 질병과 치유에 대해 알아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질병은 죄의 결과이며,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결과라고 단정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질병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어떤 경우에는 하나 이상의 원인이 관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볼 때 고대 히브리 사람들은 모든 질병은 죄 때문에 생기며, 질병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믿었습니다(3; 15:26; 26:14-16; 28:15-68). 다른 종교들은 질병의 원인을 사회질서의 붕괴에 두었는데, 즉 질병은 화가 난 어떤 사람의 저주나 전통 규칙이나 가치를 무시해서 영이 진노하여 생긴다고 믿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과학의 발전으로 모든 질병은 병균과 몸의 화학적 불균형, 기타 육체적 문제와 같은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서 생긴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외 잘못된 행동이 약물중독, 식생활 등 원인이 될 수 있고, 잘못된 관계가 신체적 감정적 질병을 일으키며, 면역력을 약화시켜 감염도 잘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타인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부모에 의한 감염, 전쟁, 사고, 테러 등 질병에 이환 될 수 있고, 어떤 병은 절망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우울증). 예수님은 질병과 개인의 죄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인정하셨습니다(2:1-12; 5:1-15). 예수님은 질병의 육체적 원인들을 인정하셨고, 더러움이나 나쁜 건강은 감정적, 심리적 원인에 기인한다는 사실도 인정하셨습니다(7:17-23). 그리고 아직도 우리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는데, 병의 원인을 잘못 추정하면 죄의식이나 고통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피해야 할 일반적인 실수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면 개인의 건강은 보장되며, 따라서 건강하지 않은 것은 불순종과 범죄한 증거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 실수는 성경, 특별히 레위기 16장과 신명기 28장의 내용을 잘못 해석한 데서 기인됩니다. 이들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를 처음에 순종하도록 부르셨다는 의미이지, 건강하고 번영하도록 부르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많은 경우 건강과 번영은 순종의 결과입니다. 그렇지만 순종의 동기가 건강과 번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오직 하나의 동기는 창조자이며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개인과 공동체가 순종의 결과로 건강, 번영을 누린다면, 이것은 개인의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으로서 더욱 효과적으로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건강은 책임이지 권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가운데 우리 자신이 더욱 창조적이고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하나님의 모든 규례를 순종하고 그것을 적용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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