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이 가신 길을 걷고 있는 분이네요 ~~
의사, 공유정옥 씨(36)를 수식하는 단어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만큼은 성공을 보장하는 꼬리표다. 맘만 먹는다면 연봉 1억 주는 회사나 병원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그에겐 항상 다른 수식어들이 앞선다.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활동하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한노보연)의 연구 위원.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에 걸렸지만, 정당한 보상은커녕 산업 재해(산재)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위한 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가.
▲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 씨. ⓒ뉴스앤조이 윤희윤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도 사실은 그래서다. 톡 까놓고 말해 의사인 그녀가 왜 그런 삶을 사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굴곡진 인생을 살지 않아서요"라는 싱거운 답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자랐는지를 늘어놓았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고 강남에서 자랐다. 공부도 잘했다. 명문 의과 대학을 나왔고 산업 의학 전문의라는 면허증도 있다. 다니던 교회 사람들도 비슷한 배경의 교양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가 집과 교회 밖에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의 부모는 가난했고 당연히 그들도 가난했다. 공유정옥 씨가 공부하기 싫다며 교회에서 울고 있을 때, 어린 그들은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열심히 산 대가로 무서운 병에 걸렸고 정당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스무 살 때는 의대 다닌다는 사실이 참 불편했어요. 학회에서 민중의 역사 이런 걸 배워도 '그래 내가 역사의 주인이야'라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난 어차피 의사가 될 건데. 서른이 되어 단체에서 상근 활동을 하면서 더디지만 제자리를 찾아간 것 같아요. 난 부유하게 자랐고, 누군가 가난하게 자란 건 내 탓도 당신 탓도 아니다. 하지만 계속 그 상태가 유지되는 건 우리 책임이다."
대학 생활은 그에게 첫 번째 전환기였다. 1학년 때 들어간 과 학회에서 그는 굴곡진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책으로 몸으로 만났다. 학회에선 수요일마다 세미나를 했다. 세미나에서는 번역서를 가지고 민주화 운동, 학생 운동, 사회 운동을 공부했다. 책에서 만난 이야기는 교회와 집, 학교밖에 모르던 공유정옥 씨에게 낯설었지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거부감은 없었어요.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이거 성경이랑 똑같네'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다녔죠.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어요."
몸으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학회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상계동 무료 진료소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 당시 상계동은 철거가 한창이었는데, 철거민이 살고 있던 마을에 용역들이 쳐들어오던 현장을 보게 됐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피신 갔던 그가 반나절 만에 다시 찾은 마을은 이미 헐려 있었다. 그와 함께 있던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집 없는 아이들이 됐다.
의대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도 상계동 어린아이들과 같았다. 혈압이 180, 190까지 올라가는데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 일하다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선택했다. 원인 모를 병에 걸렸다.
반올림을 시작한 계기가 된 황유미 씨도 그런 사람이었다. 2007년 3월 스물두 살 푸르고 푸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유미 씨. 유미 씨는 고등학교 3학년 가을에 입사한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2년 만에 급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유미 씨와 함께 반도체 부품을 화학 물질로 씻는 일을 하던 다섯 명도 같은 병에 걸렸다. 그런데 회사는 자신들은 책임이 없어 산재 처리를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 황상기 씨는 정당·언론 할 것 없이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지만, 아무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유미 씨가 세상을 떠난 후 황상기 씨를 통해 이 일을 알게 된 활동가들은 반올림의 전신인 '삼성 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 기본권 쟁취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공유정옥 씨도 한보노연 파견 활동가로 반올림에 함께하게 됐다.
▲ 공유정옥 씨는 자신의 핸드폰을 보며, 반올림 피해자는 누구나 사용하는 핸드폰, 엠피스리를 만들다가 병에 걸린 사람들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윤희윤
벌써 3년이 넘었다. 16명이 산재 신청을 했는데, 심사가 이루어진 9명 모두 승인이 나지 않았다. 나머지도 안 될 가능성이 크다. 산재 신청한 16명은 100여 명으로 추산되는 피해자들 중 용기를 낸 소수일 뿐이다. 공유정옥 씨는 10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 걸리고, 힘든 싸움일수록 이 일을 시작한 사람들 대에서 반드시 끝내야 한다고 결심한다. 물론 그 일은 고되다. 그러나 예수도 고된 삶을 살았고, 와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그 일을 하셨기에 공유정옥 씨도 이 오랜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딱 20년 전, 공유정옥 씨는 이런 생각을 했다. '결혼하지 않겠다. 머리 둘 수 있는 1평짜리 방이면 족하다. 그 방에는 접이식 침대, 작은 냉장고만 있으면 된다. 텔레비전도 욕조도 옷장도 필요 없다.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가장 늦게까지 일하자. 좁은 길, 좀 더 정결한 길, 어렵고 힘들어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자.' 공유정옥 씨는 세상 문제는 상관없이 혼자만 정결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진흙탕 같은 세상에 발 디디고 싶지 않았다. 그가 믿는 예수도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많이 소유하지 않겠다, 편한 길을 가지 않겠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예수 따르는 길은 혼자만 정결하게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적어도 그것은 공유정옥 씨의 소명은 아니다. 진흙탕 속에 쓰려져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건져 올려야 한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 발 딛고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