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이 길어서 다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내 만족으로 글을 씁니다.^^
1
어떠한 환자에 대해서도 의학은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어떠한 명의도 자기가 지금하는 처치가 최선이라고 100% 확신하는 사람은 없다.
우린 불확실성 속에서 분투하고 있다. 그속에서 우리가 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환자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이며,
사랑하므로 파생되는 환자에 대한 최선을 향한 정성과 노력 등이다.
2
환자에게 가끔은 물어 본다.
(한국 환자들은 주사를 너무 좋아하는 지라...)
"주사 놓아 드릴까요?"
환자들은 당황의 눈빛을 보낸다.
(너가 의사지 내가 의사냐는 눈빛으로)
환자에게 결정권을 주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병이 있는 환자들의 유아기적 퇴행일 수도 있다.
환자에게 결정권을 많이 주면 줄 수록 어떨 때는 불신의 눈초리가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위의 이야기에 대한 보충의 의미로 아래 글을 함께 덧붙입니다.
이하의 글은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많은 윤리학자들이 환자의 자결권을 여러 가치들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지 않고 의학이 궁극적 가치로 주장하는 우를 범한다.
슈나이더는 환자들이 의사한테 가장 원하는 것은 자결권 그자체가 아니라 실력과 친절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여기서 친절은 종종 환자의 자결권을 존중하는 것을 뜻하며, 그들이 중요한 결정에 대해 통제권을 갖도록 보장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친절은 환자들이 결정권 행사를 원치 않을 때 부담되는 결정을 대신 맡아서 해주는 것도 포함하며, 그들이 결정을 내리고자 할때도 강력하게 주장해 설득시키는 것이 올바른 배려가 될 때가 있다.
환자들이 두려워하는 수술이나 치료를 받도록 이끌어 주거나, 헛된 희망을 걸고 있는 수술을 고집하지 않도록 하는 경우다.
대다수의 윤리학자들은 이런식의 논리를 혼란스러워하지만 환자와 의사가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할 문제다.
의학 분야가 점차 더 복잡해지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진정한 과제는 가부장적 간섭주의를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친절을 지키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