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남편와 함께 시댁에 갔다.
이번 월요일이 여기서는 마침 휴일인데다가 우린 한국에서 돌아온 뒤로는 아직 찾아뵙지 못하여서 인사차 갔다. 시부모님들도 우리가 한국에 있는 동안 함께 사시던 외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숨을 돌리실겸 우리와 함께 13세기 수도원을 개방하여 만든 Mamlsbury Garden으로 나들이 갔다.
잘 정리되어 심어놓은 튜율립이 절정을 이루었고 조금씩 장미가 꽃을 피울준비를 하고잇었다. 그리고 강을 끌여들여 폭포며 호수며 그림같이 꾸며놓아 너무나 아름다왔다. 그러나...
조금씩 아파오던 아랫배의 통증이 심해지면서 더이상 걷기도 힘들게 되엇다. 집으로 일단 와서 쉬고나서는 괜찮아 지는것 같아 그 다음날 교회에 예배드리러갔다. 계속되어지는 통증속에서도 웃어가며 괜찮다 하고는 그 다음달 있었던 Water park로 교회야유회까지 따라갔다.
우리 집에 와서는 그 잘 가던 영어학교도 안가고 하루종일 침대에서 쉬었다. 그러고는 좀 나아져서 괜찮아 지는것 같아 목요일 영어학교에 갔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나를 담당하던 조산사에게 전화를 하니 빨리 병원 분만실로 오라하여 책가방을 든채로 Epson hospital로 갔다.
먼저 조산사가 와서 이것 저것 질문을 하고 태아 심음과 자궁수축의 정도를 체크했다. 그리고는 인도인 의사가 와서는 내진이며 혈액검사, 소변검사를 처방내고 사라졌다. 조산사가 다시와서는 검사가 나올때가지 기다려야한다며 남편에게는 차를, 내게는 물을 갖다주었다. 그렇게 기다린 것이 거의 3시간,,
다시 조산사와 의사가 나타나서는 내가 맹장염이 의심이 되다며 하루를 지켜보고 다음날 스캔을 해야겟다고 한다. 그리고는 소변 배양검사를 위해 다시 소변을 채취하고는 3층인 산부인과 병동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간호사실 바로 옆에 있는 4개의 침대가 있는 병실로 가게되었다. 한시간쯤 후에 파키스탄인 남자의사가 오더니 다시 질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는 호출을 받고는 다시 온다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30분쯤후, 좀 더 통통해 보이가 나이든한 의사와 젊은 의사와 함께 나타난 3명의 의사, 통통한 의사는 내 배를 여기저기 폭폭히 지르고 나는 아픈 부위를 말해주엇다.
아마도 내가 맹장염이라고 거의 90%는 확신한 것 같다. 다음날 스캔을 해보고 할일이지만 다른 의사에게 이번주내로 수술준비를 지시하는것 같앗다.
의사들이 사라진후, 걱정으로 눈물을 글썽이는 남편..오늘 밤은 더이상 할일이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야하겟지만 나를 두고 가기가 힘든가 보다. 사랑한다고 몇번이나 말하고 기도하겟노라 하면서 키스하고는 집으로 갔다.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잠시 후 남편이 가까운 중국음식점에 가서 볶음밥이랑 국수가 들어간 수프를 사왔다.자상한 앤디..그리고는 병실에 딸린 화장실을 들어가보고 나왔다.
앤디말로는 주로 세금으로 운영되는 영국병원은 건물도 낡아서 화장실 가면 타일이 벗겨지고 의생이 안좋아 도망치고 싶을것 같아 점검 해보았고 한다. 이 병원은 그런대로 괜찮다고 하더니 또한 음식이 부실하여 낫던 환자도 더 앓게 된다며 병원식사 하지말고 볶음밥을 두엇다가 배고플 때 간호사에게 부탁하여 데워달 라하여 먹으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키스하고는 집으로 갔다. 난 침대마다 비치된 성경을 찾아서 시편 23편과 139편, 그리고 남편과 매일 한장씩 읽고 있던 요한복음을 읽었다. 그러는동안 옆침대의 산모는 분만실로 내려갔고 앞에 있던 산모는 아기를 낳았는지 분만실에 올라와서는 짐을 챙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나머지 한침대도 자정쯤에 다른 산모가 와서 태아심음이나 자궁 수축 정도를 조산사가 측정하는것을 들을수 있었다.
난 진통제에도 통증이 사라지지않아 다시 추가를 요청하고 저녁을 안먹어서인지 배고픈게 느껴져 밥을 좀 먹고는 산모들의 신음소리중에도 자려고 애썼다.
커튼을 살짝 들치며 아침으로 무엇을 먹겟냐고 젊은 흑인 아줌마의 소리에 잠을 깼다. 아침 8시란다. 그래서 무엇을 고를수 있냐고 물엇더니 시리얼에 우유, 빵과 버터, 그리고 포트리지라하여 오트밀을 죽처럼 끓인것(앤디가 절대로 병원에서 주는 포트리지는 먹지말라던 것이 기억남)과 함께 커피나 홍차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빵달라했다. 그리고 커피와 오랜지쥬스..정말 음식은 남편말이 맞는것 같다. 잠시후에 병동 담당 간호사인듯한 영국아줌마가 오더니 나의 스캔이 12시로 잡혀졋고 남편이 올것인지 물어보았다. 난 그럴것 같다고 대답햇다.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는 어제 학교에서 들고온 존 그리샴의 'The rain maker'읽기 시작햇다. 그리고는 정확하게 10시 30분 , 아침을 갖다준 흑인 아줌마가 티타임이라며 홍차와 커피를 돌리기 시작햇다. 난 영국사람이 아니여서인지 별로 생각이 없어서 "no thanks' 하고는 남아있는 볶음밥이 생각나서 꺼내어 먹었다.
그리고 12시에 마침 도착한 앤디와 함께 거의 한달 반전에 초음파하던 곳으로 가서 스캔을 햇다. 아기는 정상이고 많이 큰것 같다. 저번때처럼 딸이것 같다고 얘기해주엇다. 그리고는 맹장염보다는 6cm 의 섬유종(fibroid)가 보인다 했다. 정말 마음이 휴하고 놓이는 순간이엿다.
병실에 와보니 점심으로 야채 파이와 바나나 하나가 와있었다. 그리고는 막 그날의 업무당당의사가 왔다(이번에 아마도 동유럽출신의 여의사같다). 아기가 나올때까지 특별히 할일이 없으니 집에 가라고한다. 그리고는 통증이 있을때마다 진통제를 먹으라며 처방해주엇고 2주후에 외래방문과 4주후에 follow up 스캔을 할거란다. 우린 점심을 빨리 먹고는 약을 들고 집으로 왔다. 하루만에 온 집은 내게는 천국과 다름없었다. 계속되던 통증으로 불편해하고 걱정하던 마음도 사라졋고 태어날 아기에 대하여 더 관심있게 되고 기대하게 되었다.
영국은 의료제도가 정부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간호사나 의사월급이 공무원처럼 정해져있다. 대처 총리시절부터 다른 직종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해왔으나 일찍부터 지식층이였던 그들은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가 고임금의 영국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고있다. 그러다보니 영국의 본토사람들은 점점 의과대학이나 간호대학을 기피하고 있다. 일례로 크리스찬 국가엿던 영국에 기독간호사회가 사라진 것은 벌써 옛날 이야기다. 남편이 내가 간호사엿엇다고 말하자 모두들 빨리 아기낳고 간호사로 병원에서 일하라고 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래서 외국사람들이 그 빈자리를 대신하다. 첫째로는 비자를 얻어 일하기쉽고 자국의 나라에 비하여 물가가 비싸기때문에 비록 낮은 월급이여도 인도나 파키스탄에서보다는 월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자녀교육이나 여러 사회 제도가 잘되어있어 영국에서 살기에 좋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다른 직업에 비하여 영국사람들과 경쟁에서도 유리하다.
집에 와서는 먼저 캐롤(시어머니)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몇주전에 유산한 외사촌 줄리, 그리고 미리암(막내동서) 모두들 내게 기도하겟노라고 메세지를 보내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남편은 교회의 10대 사역이 있어 런던에 가고 나는 정말 푹잤다.
그리고는 아침,, 통증이 훨씬 덜 하였다. 진통제는 일단 안먹어보고 하루를 지냇다. 그런데 잠자리에 들려하니 하루종일 진통제를 안먹고 지냈던 것이 기억나 아랫배 오른쪽 섬유종이 있었던 자리를 만져보니 만져지지가 않는 것이였다.하루사이에 몹쓸 종이 줄어들엇나보다. 남편과 함께 감사기도를 하고는 잠자리에 들엇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런 통증도 없이 잘 지내고있다.
한국에 다녀온 뒤로는 앤디 외할아버지의 장례식과 여행으로인한 피곤함, 그러면서 아기에 대하여도 감사하지 못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기회로 하나님이 여기 머곳 영국에서도 나와함께 하시고 믿음의 좋은 시댁 식구들과 친구들을 새롭게 깨닫게 한 귀한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