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창문, 세상의 창문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2)
얼마 전 국민일보에 자폐아 자녀를 둔 어느 어머니의 감동적인 간증이 실렸습니다.
처음에 아기가 태어났을 때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두 돌이 되도록 엄마라는 말을 못하고 CM송을 반복적으로 따라 부르는 행동이 이상해서 병원에 가니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엄마는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요.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정상인이 아니고 보통사람과 어울릴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절망과 고통 가운데 시간을 보내다 자녀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려고 덤볐지요. 달래기도하고 다그치기도 하고 어떻게든 정상인처럼 살게 하고 싶었어요.
기독교계통 초등학교에 “이 아이가 입학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겨서 겨우 입학시켰지만 결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엄마는 원통함과 절박함에 수많은 날들을 산에 올라가 철야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 그 아이는 내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다. 네 소유라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맡겨준 대로 키워라. 그 아이에게 나의 계획이 있다.”
엄마는 자신이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방식대로 몰아 세운 것에 대해 눈물로 회개를 했고 자유함과 지혜를 얻었습니다. 편식습관도 고치고 학교에 입학해서 수영선수로서의 자질을 키웠고 국가대표선수로 출전하여 메달도 따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엄마의 고통과 아픔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깨달을 때까지 자유함과 지혜를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는 것이 쉽지 않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고 그분의 뜻과 계획을 알게 된다면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제한되고 부분적인가요?
마치 영화가 시작한지 한참 지나서 입장한 사람과 같습니다.
앞의 story를 잘 모르기 때문에 지금 누가 주인공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기 전에 그 곳을 나와야 합니다.
세상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이 땅의 살아가는 짧은 시간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세상과 사람의 목적과 의미를 알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요?
칼빈주의 신학자이자 수상이기도 했던 아브라함 카이퍼는 세계관(world view)라는 말로 설명을 했습니다.
어느 민족 누구나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관점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일종의 종교와도 같은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이지만 세계관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가르쳐 주지 않으시면 온전한 세계관을 가질 수 없어요.
세상엔 물질만이 있다고 보는 사람은 하나님 없이 살게 되고 물질만 추구하면서 살면서 물질만능의 세상을 만듭니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삶과 문화와 운명을 결정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이 세상을 보시는 관점을 말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기초이자 출발점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렌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창조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고 흡족했어요. 작품이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되어서 기뻤거든요.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고 세상을 다스리고 가꾸는 일을 맡기셨어요.(문화명령)
그래서 사람의 생명은 절대적인 가치가 있어요. 수정되는 그 순간부터 사람이지요.
그래서 자살, 낙태, 살인, 배아복제와 같이 그것을 파괴하거나 함부로 다루는 것은 크나큰 죄악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도록 창조되었어요.
사람은 육체와 영혼이 결합된 존재예요.
* 타락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자유였지만 한가지만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이고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고백과도 같은 것이었지요.
그러나 사람은 그것을 거부했어요.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 싶었지요.
죄가 세상에 들어왔어요. 컴퓨터 바이러스 처럼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었어요.
고통과 죽음으로 사람들은 신음했어요.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완전히 돌연변이처럼 죄를 짓고 다녔지요. 미움과 살인, 분열, 갈등, 자연재해,질병,상처, 출산의 고통, 업무의 스트레스,..세상은 갈수록 엉망으로 망가져 갔지요.
* 구속
하나님은 마음이 아팠어요. 자신의 자녀인 사람들이 배반한 것이 그러했고 죄와 죽음으로 고통 받는 것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어요.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값비싼 댓가를 치루어야 했어요. 바로 하나님 자신이, 아들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서 모든 죄악을 감당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이미(already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어요.
죽음과 부활로 사탄의 세력을 꺾으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게 하셨습니다(not yet).
주님 다시 오시는 날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노력으로 유토피아가 이루어지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세상에서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제자도에는 댓가가 필요합니다.
대학시절 여름전도여행을 갔을 때 어느 형제가 목매어 죽으려고 준비하고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읍니다. 그에게 사영리로 전도해서 영접기도까지 했고 교회에 다니시도록 권면을 했어요. 감사한 일이죠.
그러나 그것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일을 다한 것일까요?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할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교회에 나가서 공동체 안에서 격려받고 사랑과 은혜 가운데 성장하지 않는다면, 카드빚, 실업과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면 또 다시 재발할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하지 않으면 다른 대안이 없읍니다.
배아줄기세포 문제에서도 그것이 생명윤리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가톨릭에서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위해서 200억원을 지원한 것이나 생명윤리법안 통과를 위해 전문적인 참여를 하거나 교회와 시민단체와 언론기관을 통해서 대국민 홍보와 운동을 벌이는 등의 구체적인 대안과 헌신이 필요한 것이지요.
21세기는 열정 뿐만 아니라 영성과 전문성(지성)을 갖추지 않으면 영향력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조직적인 팀사역이 되지 않으면 사회적인 영향을 끼치기가 어렵습니다.
복음 전파와 사회적인 행동은 제자도의 양 날개이지요.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는 ‘선교명령’에는 피조물을 다스리라는 ‘문화명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과 제자도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외형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헌신하는 사람만 제자로 받아들이셨읍니다.
12명만 집중적으로 훈련시킨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을 그들에게 위임하시기 위함이었죠.
1) 개인적으로 경건하게 사는 것 뿐만 아니라
2)공동체로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랑가운데 녹아져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하셨고
3)그들이 세상에 나가서 선교사로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한국에 기독교 세계관과 제자양육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70,80년대입니다.
복음화와 민주화가 그 당시의 과제였지요.
(90년대 이후엔 공산주의 붕괴와 문민정부 수립으로 포스트모던이즘, 종교다원주의, 환경, 생명윤리, 시민운동 등으로 이슈가 다변화되었지요)
기독교 내에서는 보수측은 복음화에, 진보측은 민주화에 주력했습니다.
Explo74는 한국 복음화 운동의 이정표가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읍니다.
한국교회는 전도 운동과 성령운동을 통해서 급속도로 성장했읍니다.
같은 해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에서 존 스토트 목사님은 로잔언약을 통해서 " 복음전파가 최우선이지만 정치적,사회적인 사명도 감당해야한다"고 역설하여 보수와 진보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성경적인 기독교 선교 방향을 제시했읍니다.
최류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캠퍼스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혼동스러웠습니다.
복음 전파가 우선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사회를 향해서 복음를 전하는 것으로 우리가 할 일을 다한 것이냐는 질문으로 머리가 아팠지요.
더구나 세상의 빛과 소금 역활을 감당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각종 사회비리 사건에 연루가 되었어요. 개인 신앙과 교회 성장에 관심은 있으면서도 세상을 향해서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교회에 대해서 많은 청년,대학생들이 실망했어요. 교회를 떠나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지요.
누구도 명쾌한 대안을 내놓지를 못했습니다.
그 당시 기독교 세계관 연구모임이 갈증을 채우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창조, 타락, 구속, 하나님 나라 라는 관점으로 사회문제를 해석하고 대안을 연구하는 모임이었는데 저도 방학을 이용해 참석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적인 토의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모델을 제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20세기 초 칼빈주의 신학자이자 네덜란드 수상이었던 아브라함 카이퍼에 의해 제시되었습니다.
그는 수상으로 있으면 “모든 영역속의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칼빈주의 이상을 실현하려 노력을 했습니다. 자유대학교를 세워서 사람들을 키우려고 했고 도예베르트가 이어서 학문적인 체계를 세웠습니다.
미국의 칼빈 신학교와 캐나다 뱅쿠버의 기독교세계관 대학원을 거쳐 한국에도 전수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손봉호 교수님과 미국 선교사 웨슬리가 선각자이자 개척자였습니다.
지금은 후진들에 의해 발전이 되어서 기독교세계관에 대해 논할 수 있는 10개국에 한국이 속하게 되었고 사회 곳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복음 전파 일변도에서 모든 영역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으로 균형잡히고 성숙 되도록 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고 포항 성시화 운동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복음 전파와 사회적인 행동(social action), 복음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고 하나님 나라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선교단체와 지역교회는 역할은 다르지만 한 지체이고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십니다.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사랑으로 녹아져 하나가 될 때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는 단체나 교회를 초월해서 모든 그리스도의 몸이 연합하여 일할 때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민족과 세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계화된 시대에 살고 있고 한국은 제3세계에 있는 문제를 다 갖고 있었지만 민주화, 교회성장, 경제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룩한 유일한 개발도상국입니다. 이 땅에 거룩한 문화가 이루어질 때 전 세계에서 배우기 위해서 찾아 올 것이며 수많은 선교사들을 통해서 선교지 곳곳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의료인으로서 생명과 건강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야 겠습니다.
육체적이고 생물학적인 면 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전인(whole person)으로 대해야 겠습니다.
의료는 단순히 복음전파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는 방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감당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제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읍니다.
지난 2주간의 월요모임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의료인과 기독교 세계관”시간에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짧지만 의미있는 토의를 했습니다.
“제자입니까” 시간에는 메시지를 했습니다.
10step은 계속 진행될 예정입니다.
다음 주엔 학생 아가페와 함께 추수감사 예배드린 후 별도의 모임을 가질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장18-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