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Who do you say I am?)
마태복음 16장13-28절
이번 주 월요모임에서는 마태복음 16장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갈릴리를 떠나 서편으로 40km 떨어진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을 지나가고 있을 때입니다.
공생애 사역의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이었지요.
그동안 많은 기적과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오천 명을 먹이시고 사천 명을 먹이시고 물 위을 걸으시는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사람들은 억지로 예수님을 왕을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냐’에는 관심이 없었지요. 단지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고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사람들을 떠나서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인기 절정이고 성공의 정상에 선 것 같은 그때에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말하더냐?”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였습니다.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에 한 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지금까지 왔던 선지자들과 비슷한 행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주님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제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 때 시몬 베드로 대답했습니다.
“ 당신은 그리스도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선지자와 하나님의 아들은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선지자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결국 사람의 아들, 사람 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서로 만날 수 없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 이런 대화가 오고 가는 곳이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이라는 사실에 유념해야 합니다.
이곳은 약 50 여 년 전 헤롯 왕이 로마 황제 가이사를 숭배하기 위한 신전을 세운 도시였습니다. 한 인간을 신격화할 뿐 아니라 로마의 힘과 지혜를 칭송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곳에서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는 것은 로마 황제보다 더 크고 위대한 분임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촌동네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은 로마 식민지였습니다. 갈릴리 호수가 아닌 황제의 도시에서 이런 고백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납득하지 어렵습니다.
더구나 베드로는 동키호테 같이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고 다혈질이고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 폭탄 같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정확한 정답을 말한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마치 선생님이 수업 중에 학생들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졌는데 골찌 하는 학생이 정답을 말하는 것 처럼 놀라운 일이지요.
예수님은 흡족해서 칭찬하셨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 이것을 알게 된 것은 사람들이 알려 주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신 것이다.”
그러면서 엄청난 약속을 하십니다.
“너는 베드로(petros)다. 내가 이 반석(petra)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는 반석이란 말입니다. 베드로는 반석과는 정반대의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측불허의 변화무쌍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주님은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항상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베드로는 결점이 많았지만 주님은 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믿음의 고백을 교회의 기초로 삼으시고 축복과 약속의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교회는 선지자와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졌습니다. (엡2:20)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는 세상의 거대함에 압도당합니다.
도시와 세상의 거대한 조직 속에 나는 한 개의 부속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내가 세상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너무도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더구나 나 자신을 보면 약점투성이지요.
때로는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마저 작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단지 세상의 좋은 스승들, 훌륭한 인물 들 중에 하나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구요.
세상의 권력자나 막강한 실력자 앞에서 2,000 년 전에 힘없이 죽어간 한 청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때 놀라운 약속이 주어집니다.
그 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공동체)를 세우시고 어떤 악한 세력도 흔들지 못하는, 오히려 세상을 정복하고 변화시키는 공동체를 세우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회복되어야 겠습니다. 믿음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공동체 안에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주님의 약속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당시에 열쇠는 종에게 맡겨지고 집안을 관리하게 했습니다. 천국 입장을 허용하는 권세를 주신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에게만 이런 권세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후의 삶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주님의 책망을 받기도 하고 큰소리쳐놓고는 두려움에 주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 했읍니다. 또 낙심해서 갈릴리 어부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실패하고 절망했지만 주님은 베드로를 다듬어 주시고 성숙시키는 기회로 사용하셨읍니다. 첫사랑을 회복시키시고 사도로서의 권위와 사명을 다시 세워 주셨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했을 때 베드로는 담대하게 설교를 해서 3,000명이 회개하며 주님께 돌아 왔고 초대교회 선교의 문이 열렸습니다. 주님처럼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렸읍니다. 고넬료 가정이 회심함으로 이방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베드로 전, 후서를 읽으면 불같은 시험도 이겨내고 세상의 가치관과 이단에도 흔들리지 않는 베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제자를 삼으시면서 베드로(반석)이라고 불렀던 것은 단순한 별칭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미래의 가능성이고 주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반석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셨던 것이지요.
모든 분들에게 이런 하나님의 손길과 계획이 있음을 믿습니다.
21절에서 주님은 자신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넘겨져서 죽임을 당하고 3일 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전은 십자가였습니다.
항상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사셨지요.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할 때의 ‘때’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를 말하는 것이지요.
십자가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자학이나 실패나 멸망이나 어리석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이고 영광이고 승리입니다.
세상의 방법은 인기와 권력과 육체적인 만족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논리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40일 금식이후에 광야에서 사탄이 시험했던 것도 십자가 아닌 사람의 방법을 선택하도록 유혹한 것이었지요.
베드로도 똑같은 방법으로 가로 막았습니다. 옷자락을 붙잡고 주님을 꾸짖었습니다.
주님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 하는도다”
우리가 주님의 방법으로 하지 않은다면 가장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의 사역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불신자가 아니라 성령충만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지요. 교회를 떠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실망해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받은 상처때문임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했지만 세상의 논리로 이해를 했습니다.
주님의 비전과 사역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그전의 모습으로는 더 이상 주님을 따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전의 모습이 죽어야 하고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제는 십자가가 자신의 비전이고 방법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새로운 변화와 삶의 지침을 제시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십자가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죽을 때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가 아닌 방법을 택하여 살기를 바란다면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온 천하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궁극적인 전망과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주님이 영광 가운데 오셔서 심판하시는 때가 온다는 것이지요.
십자가 사건은 2000년 전에 일어났지만 십자가의 은혜는 날마다 누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상을 받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은 날마다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며 알기를 원했지요.(빌3:9-10)
이제는 믿음의 고백을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짊으로 풍성한 열매와 축복과 영광을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날마다의 삶 속에서, C C C와 아가페 안에, 한국교회와 민족과 열방 가운데 이런 축복이 있길 기도합니다.
안 세환 자매가 “ 이 사람입니까?” 소책자 내용으로 배우자인지 확신하는 방법을 나누어 주어서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05다운과 06다운을 연락하는 것과 다운총회와 2006년 다운사역을 위한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월요모임에 나날이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