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장. 이방의 문을 연 복음
몇 개월 전 어느 선교사를 건강검진 한 적이 있었습니다.
10여 년간 아프리카 선교를 하였는데 얼마 후면 기도해왔던 선교지 병원을 개원하게 된다고 기뻐했었지요. 까만 피부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 소식을 들으니 개원식에 그 나라 대통령과 정부요인 들이 참석하고 TV에도 하루 종일 방영되어서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 선교사님을 진찰할 때 피부 여기저기에 있는 흉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말라리아와 풍토병이 여러 번 지나간 흔적이라고 하던데 사도바울이 내가 “예수의 흔적(stigma)”(갈6:17)을 가졌다고 한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안타깝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
한사람이 온전히 주님께 드려졌을 때 얼마나 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요.
오늘 본문의 바울과 바나바도 1차 선교여행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들은 도시에 있는 유대인 회당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회당에는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이 있었고 구약성경을 알고 있었습니다. 회당은 당시 로마 제국 곳곳에 유대교를 전파하는 선교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복음을 받아드리면 훨씬 더 쉽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지요. 사도바울이 10여 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에 로마 제국의 동쪽 1/2의 선교를 마치고 로마를 거쳐 서바나로 가려고 했던 것도 이런 비결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도시에 전해진 복음은 도로망을 타고 제국의 곳곳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부터 이고니온에 와서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과 이방인의 허다한 무리가 믿었습니다. 반대로 순종치 않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반감을 가지고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오랫동안 머물면서 주를 힘입어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표적(sign)과 기사(wonder)로 은혜의 말씀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어려움 가운데도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베푸십니다.
이제는 성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복음이 전해졌고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확연히 나뉘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과 관리들이 돌로 쳐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는데 그 정보를 입수하여 급히 성을 빠져나갔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누입니다. 그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복음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사람이 일어난다고 좌절하거나 걱정하지 마십니다. 사단의 공격과 방해로 고난당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는 축복이 있습니다.(벧전 4:14 )
루스드라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성문 앞에 선천성 장애로 걷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울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믿음이 생겼습니다.(롬10:17) 바울은 그의 믿음을 보고 고쳐주어 걷고 뛰게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는데 바울이 베드로와 같은 사도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했지만 바울은 그의 믿음을 통해서 고쳐주었고 베드로의 설교로 5천명이 회개하였는데 루스드라 사람들은 엉뚱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바나바를 제우스(Zeus), 바울을 헤르메스(Hermes)라고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 지방에는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이곳을 방문했는데 사람들이 다 배척하고 두 노인만 영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화가 나서 두 노인을 제외하고 모두 홍수로 쓸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바나바는 덩치가 크고 연장자여서 主神인 제우스라고 생각했고, 바울은 왜소하고 말을 잘해서 메신저였던 헤르메스라고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겠다는 마음에 성대히 잔치를 베풀려고 소(bulls)와 화관을 가지고 왔던 것이지요.
두 사람은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로 뛰어들어서 말렸습니다.
“우리도 당신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당신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우상숭배를 버리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알고도 인내하셨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셨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고 열매를 맺고 음식과 기쁨으로 만족하게 하셨지요.”
성공 뒤에 오는 유혹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너지나요. 자기 우상화의 유혹에 단호히 거부함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여기서는 유대 회당이 없으니까 저자 거리에서 자연신에 익숙한 종교관을 이용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의 메시지는 변함이 없었지만 전도방법은 유연했습니다.
또 다른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이번에는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군중을 충동질하여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 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으로 섬기려던 사람들이 돌변하여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군중이 얼마나 쉽게 유혹에 현혹되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호산나!”하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던 군중이 한순간에 돌변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고 외쳤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민주주의나 군중심리는 잘못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옳습니다.
죽은 줄 알고 내다 버렸는데 바울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스데반처럼 순교하지 않은 것은 아직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때 바울이 삼층천(三層天)에 올라가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얘기합니다.(고후12:2 )
바울은 그 상황에서도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성으로 들어갔다가 더베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제자가 되는 축복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를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배척했던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을 들려서 교회를 세우는 세 가지 일을 하였습니다.
첫째, 말씀(사도의 가르침)으로 믿음을 견고히 함
이 믿음에 굳게 있으라 권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은 교회의 기초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자랄 수 있는 토대이지요.
둘째, 장로(영적 지도자)를 세움
장로는 목회와 치리를 담당하는 지도자를 말합니다.
바울을 대신할 지도자가 있었기에 바울이 떠난 뒤에도 교회가 든든히 서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주님께 의탁함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고 성령께서 보호하시고 자라게 하십니다.
중국이 공산화되고 선교사들이 추방당할 때 모두가 중국선교는 끝장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 후 다시 개방이 되어 중국의 사정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놀랍게도 수천만 명으로 성장하는 기적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 없이도 성령께서 교회를 키우셨던 것이지요.
지도자로서 탁월함은 그가 떠난 뒤에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키운 사람들에 의해 공동체와 사역이 더 번창하고 있는지가 성공의 척도이지요. 영적 재생산의 축복이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해서 약 1년간의 단기선교를 마치고 안디옥 교회로 돌아와 선교보고를 하였습니다.
1차 선교여행은 특징은 두 가지인데
첫째,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신 것, 바예수를 굴복시킨 것,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고 기적이 일어난 것 모두가 성령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둘째, 이방인들에게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교회가 이방선교를 위해서 쓰임 받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면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오히려 유대인보다 이방인들이 복음에 대해서 열려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핍박이 왔지만 쫓겨서 여기저기를 다니다보니 오히려 그것이 복음이 더 널리 전파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손해 보지 않으십니다. 어떤 어려움과 환난도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지 못합니다.
이 선교보고를 들으면서 모두가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아가페에도 있길 기도합니다.
두 사도는 파송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교회를 섬기며 다음 선교를 준비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때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에 편지를 썼는데 그것이 바로 갈라디아서입니다.
“주님, 어떤 환난도 주님의 구원과 계획을 막지 못함을 믿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당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믿음 가운데 견고하게 하셔서 기적과 구원을 경험하게 하소서. 성령께서 아가페 안에서 많은 선교사들을 일으키셔서 이방의 문을 여는데 사용하여 주시길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