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소: 회현동 아가페 사무실
* 시간: 밝을 환하게 볼 수 있는 이른 저녁 시간 7시 30분
*함께한 이들 : 김재현, 장한나, 박경지, 임유경, 이정선, 조원민, 안세환, 전현지 ,
장윤영, 문찬희, 배상필, 김영란간사, 05'윤경아 다운 약사
수련회를 마치고 이뤄진 월요모임은 하나님의 첫사랑 회복에 대한 얘기로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함께한 이정선 순장님과 함께 해서 반가웠고
'어떻게 성령충만을 계속 받을 수 있는가? '라는 주제의 10 steps 3단계 제 6과 순모임도 첫사랑 회복과 어울리는 주제로 우리들의 삶에 요긴하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 좋았습니다.
수련회에서 받은 은혜를 월요모임에서 풍성히 나눌 수 있는 우리가 참 행복합니다.
이러한 기쁨을 많은 순장님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은혜로울 것이라는 생각에
순장님들이 더 기다려 집니다.
아래의 팸데이 소식 들으셨죠? 함께 모여 그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위에 널리
알려주세요..그리고 순장님들도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 광고
1. 다음주는 다운 약사가 주인이 되시는 팸데이 입니다. 8월은 신호부부가 주인이 될 것 인데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자랑하실 수 있는 시간입니다.
2. 10 steps 3단계가 복습만 남았습니다. 성령과 사도행전말씀을 통한 신앙의 성숙
이젠 평가를 해볼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부한 내용... 머리에 떠올려 보신다면 더 은혜가 될 것입니다.
8월 첫주는 함께 정리와 복습을 하고 다음 시간 '장학퀴즈와 골든벨'을 울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넌센스 퀴즈로 주일학교때의 실력도 발휘하시고 귀한 말씀 줄줄이 암송하신다면 장학금도 풍성하게 타 가실 수 있습니다. 들고 가기 어려울 정도의 푸짐한 상품도 준비되어있으니 순장님들 한번 도전해 보세요..
*** 사도행전 15장. 두 개의 갈등 *****
어느 교회당에서 카페트를 깔게 되었는데 어떤 색깔로 하느냐로 교인들의 의견이 둘로 나뉘었습니다. 한쪽은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빨간 색으로 해야 한다고 했고 한 쪽은 푸른 초장을 상징하는 녹색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로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서 보혈파와 푸른 초장파로 나누어서 다투다가 교회가 둘로 갈라섰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어느 교회에서는 세족식에서 오른쪽 발부터 씻어야 한다는 편과 왼발부터 씻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으로 갈려 교회가 분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서도 비본질적인 문제로 갈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진리냐 이단이냐는 문제는 명확한 해답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문화와 관습은 회색지대이고 다양하여 오히려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람이 모인 곳에는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잘 극복하면 성숙하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와 사역에 심각한 위기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선교역사에서도 본질적인 문제와 비본질적인 문제를 분별하지 못해서 실패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이 아메리칸 인디언을 선교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청교도들은 경건하고 말씀에 대한 깊이와 열정이 있었습니다. 인디언 말을 배우고 열심히 복음을 전해서 회심자가 생겼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를 믿을 뿐만 아니라 영국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착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회심자들을 인디언 마을에서 나오게 해서 따로 신앙공동체를 만들고 영국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디언도 아니고 영국 사람도 아닌 별종이 생겼습니다. 인디언 사회에 적응할 수도 없고 그래서 동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어서 선교는 실패했습니다. 요즘 선교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일어나곤 합니다. 비록 미국의 초창기 선교는 실패했지만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같은 신앙의 영웅을 탄생시켰고 그의 일기는 후대에 선교 열정을 불어 넣었으며 미국이 20세기 세계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본질적인 문제와 비본질적인 문제로 갈등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문제의 발단은 유대에서 안디옥 교회에 온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만으로는 부족하고 율법이 더해져야 하고 십자가의 구원은 불완전하다는 말이지요.(갈2:16) 바나바와 바울은 그들과 논쟁을 했습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문제는 그동안 묵인되어 왔습니다.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 성령이 임하고 회심한 일에 대해서 반론을 제시한 사람이 있었지만 베드로의 증언으로 무마가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세워져 바나바를 파송할 때도 그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파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동안 숨겨진 갈등이 표출되었던 것이지요. 이것을 지혜롭게 수습하지 않으면 교회가 분열되고 선교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때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과 몇 사람으로 대표단을 구성하여 예루살렘에 보냈습니다. 예루살렘 회의가 소집이 되어서 바리새인 출신 제자들이 이방인도 할례 받고 율법을 지키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발언을 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주시고 믿음으로 마음을 깨끗하시는데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지키지 못한 짐을 지게 하려는 것입니까? 우리와 이방인 모두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줄 믿습니다.”
이어서 바나바와 바울이 1차 선교여행을 통해서 이방인에게 일어난 능력과 기사를 증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회의의 의장인 주의 형제 야고보가 발언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방인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처음 계획을 이루시는 것을 시몬이 증언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의 예언도 이것과 일치합니다.
‘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쓰러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킬 것이니 이것은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컫는 모든 이방인들이 주를 찾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지 말고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 매어 죽인 것,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들은 옛날부터 각 도시에서 모세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안식일 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글을 읽기 때문입니다.”
이 회의는 아름다운 결론을 맺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진리에 대해 동의를 했습니다. 십자가만으로 충분합니다. 여기에는 할례나 율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문화와 관습에 속한 비본질적인 문제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교리와 신앙고백이 같다고 저절로 한마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는 문화와 관습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마치 미국 사람이 한국에 와서 음식, 예절, 관습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는 것과 비슷한 경우겠습니다. 로마제국 곳곳에 있는 회당에서 안식일마다 모세율법을 가르치는데 유대인들이 이방인에게 다가가기 어렵게 하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레위기 17장, 18장에 나오는 음식과 결혼 문제입니다. 우상 숭배나 우상숭배 제물, 죽은 짐승을 피 채 먹는 것, 근친결혼은 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자칫 유대인-이방인 그리스도인 사이의 장벽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원활하게 위한 안전장치로 4가지의 금기사항을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이 받아들이기에 큰 짐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유대인이 될 필요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회의에서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를 대표로 편지와 함께 보내어 회의 결정 결과를 알렸습니다. 이 소식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본질적인 문제는 타협하지 않았지만 비본적인 문제는 유연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는 목숨을 걸고 지켰지만 헬라인 디도에게는 할례를 받지 않게 하고 어머니가 유대인인 디모데는 할례를 받게 하고 자신도 예루살렘에 가서는 결례를 행해서 장애물이 없도록 했습니다.
바울은 이제 1차 선교여행 때에 세운 교회를 돌아볼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나바에게 2 차 선교여행을 제안합니다. 그런데 큰 난항에 부딪혔습니다. 1차 선교여행 때 낙오되었던 마가 요한을 데려가느냐는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요한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에 찬성했고 바울은 사역자로서 자격미달이라고 반대했습니다. 바나바는 사람을 세우는 것에 은사와 열정이 있었고 마가의 외삼촌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1차 선교여행에서 어려움과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거치면서 선교를 위해서 사적인 감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바나바는 관계 지향적이고 바울은 목표(일) 지향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성향이 다르다는 것이지 어는 한쪽을 옳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도움과 동역이 필요한 관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도는 그만 차이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심하게 다투다가 끝장을 보고 말았습니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소아시아로 교회의 파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어떻게 사도들이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분열하게 되었는가.
그러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분열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차이를 인정하고 적절하게 타협하거나 자연스럽게 두 팀으로 나누어 서로를 축복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사도들이나 우리나 연약한 사람입니다. 약점이 있고 유혹이나 시험에 넘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실존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비유를 해서 초신자가 벽돌의 밑면이고 사도들이 벽돌의 윗면이라면 하나님은 63빌딩이나 타워팰리스 보다 더 높은 수준에 계시지요.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티끌이나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것은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불러 주시고 자녀삼아주시고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은혜의 복음입니다. 성령의 능력과 도우심이 없이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넘어지고 실수하지만 하나님은 뒷감당을 하시고 아름답게 인도하셨습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의도대로 다시 하나님의 일군으로 서게 됩니다. 베드로를 만나서 예수님 이야기와 베드로의 실패와 회복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계속 성장하여 마가복음을 기록하였고 바울도 인정하는 유능한 일군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바울과 바나바는 틀림없이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했을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지 않으면 상처와 쓴뿌리로 남아서 영혼을 병들게 하고 공동체와 사역 모두에 투영이 될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따로 2개의 선교팀으로 사역하면서 선교의 영역은 더 넓어졌습니다. 바울은 2차 선교여행에서도 매를 맞고 옥에 갇히거나 죽이려고 달려드는 유대인들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아마 마가가 동행했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손해 보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실수에도 상관없이 하나님의 선교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주님, 저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시고 의롭게 하시고 자녀를 삼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이 진리 위에서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비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유연하고 용납하고 열린 마음을 주시옵소서. 한사람 한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특별하게 만드신 주님,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로 인하여 기뻐하게 하시고 서로의 약점을 가려주고 장점을 세워주는 아름다운 공동체와 사역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