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월요 모임
회연동 아가페 사무실, 저녁 7시 30분
참석 인원: 총 16명, 조종욱 간사님, 김영란 간사님, 박국양, 경쾌수, 조원민, 문찬희, 배상필, 황창연, 박유미, 박경지, 김재현, 김효원, 성유미, 하정윤, 성귀옥, 양영란
이번 월요 모임에는 여러 선생님들께서 와 주셨습니다. 그 중 양 영란 선생님께서 처음 참석 하셨는데 선생님은 서울대 간호대를 나오시고 캄보디아에서 2년간 KOICA 활동 하신후 캄보디아 단기선교도 여러 번 참여하셨고 이번에 캄보디아에 설립되는 간호대학 (세계간호사선교회)에 교수로 가시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간호학과 교육과 더불어 캄보디아 의료인의 기독교 선교에 이바지 하시길 기대하면서 이를 위하여 같이 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문 찬희 선생님의 사도 행전 말씀과 (아래) 순모임을 가졌습니다. 추가로 문 찬희 선생님의 새로운 직장인 서울기독병원에 현재 간호사와 의사가 많이 부족하다고 하셨고 더 많은 아가페 다운들 또는 선교에 대한 비젼을 가진 기독의료인 들이 참여하여서 아가페 선교 병원으로 거듭 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순모임은 IVP 케어링 시리즈 2과 ‘염려하는 사람을 위하여’ (빌 4:4-9) 라는 제목으로 가졌습니다.
광고사항
9월 22일 밤 8시 30분, 부암동에서 9월 다운 리트릿이 있을 예정입니다.
9월 25일 월요모임 때는 총 동원 아가페 팸 데이입니다.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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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7장. 바울의 선교 전략
노방전도를 하다가 일어났던 일이라고 합니다.
전도하러 나간 곳이 여관과 모텔이 즐비한 환락가였습니다.
아침인데도 술 취함과 성적인 음란함이 느껴졌지요.
어떤 분이 용기 있게 메가폰을 잡았지만 무슨 말을 해 야 할 지 머뭇거리다가 외쳤습니다.
“ 거기 죄짓는 사람들~ 예수 믿으시오.”
나중에 평가회에서 열정은 좋지만 방법을 바꾸는게 좋겠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확신과 열정이 있어야 하지만 누구에게 전하느냐에 따라서 방법도 달라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와 아덴을 방문하는 데 그곳마다 대상이 달랐고 방법이 달랐습니다.
마게도니아의 2번째 구역의 수도인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안식일마다 회당장이 정해진 구약성경 구절을 읽고 “이 말씀에 대해서 강해하실 분 없으십니까?”라고 청하면 바울이 나가서 말씀을 해석해주면서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한 후 다시 살아날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라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 때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회심했습니다. 유대인, 유대교에 입교했던 헬라인의 큰 무리와 귀족 부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좇아갔습니다. 바울의 전도는 유대인들의 시기와 반발을 낳았지만 이방인들은 환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저자 거리의 깡패 같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야손의 집에 들이닥쳐서 바울 일행을 찾았지만 피신한 뒤였습니다. 그들은 거짓 고소를 했습니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자들이 여기에도 왔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다른 임금, 예수라 하는 자가 있다고 한다.”
당시에 로마황제를 숭배하라는 가이사의 명령이 있었는데 유대인들의 소요가 로마 곳곳에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바울을 반역죄로 몰아세우려고 했던 것이지요. 대신에 야손이 구속되었지만 보석금을 치루고 석방되었습니다.
바울은 세 안식일에 3번 복음을 전한 뒤 쫓겨났습니다. 그 이후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진 박해를 받았습니다. 회심은 했지만 양육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바울의 선교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놀라운 내용을 보게 됩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도다.”(뎃전 1:6-7)
바울은 쫓겨났지만 성령께서 그들을 친히 키우셨던 것 이지요.
20세기 선교역사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선교사들이 모두 추방당했습니다. 평생 중국선교에 헌신했던 허드슨 테일러는 낙심했습니다. 이제는 중국선교는 끝장이라고 절망하여 병이 든 후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누구도 허드슨 테일러가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국교회가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성령께서 1억에 가까운 교회로 성장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후대에 세계선교의 모본과 도전이 되었습니다. 선교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선교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부르심에 순종하여 최선을 드리는 것입니다.
밤을 이용해서 바울과 실라는 탈출하여 남쪽으로 160km 정도 떨어진 베뢰아에 도착합니다. 거기서도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신사적이고 편협 되지 않게 성경을 받아 들었습니다. 성실하고 편견이 없이 “그것이 진리인가 아니가” 비판하며 성경을 대했습니다. 안식일 뿐만 아니라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보다 더 건전한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었고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쳐들어와서 방해하는 바람에 오래가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선교여행의 계획에 없던 아테네에 도착했습니다.
철학과 문화의 도시 아테네는 헬라의 수도이고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제국의 3대 도시였습니다.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조각과 동상들이 화려하고 웅장한 도시였습니다. 광장에서는 철학자들의 토론을 들을 수 있고 집회에서는 민주주의를 호흡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느낀 것은 분노였습니다. 그는 온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 찬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숭배하고 있는 무지와 불순종의 모습에 의분을 느꼈던 것입니다. 인간의 최고 지성과 문화를 자랑하는 아덴가 우상숭배의 노예가 되어 있는 모순을 보였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유대교에 귀의한 이방인들에게, 저자 거리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과도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예수와 몸의 부활은 그들에게 생소했습니다. 그들은 호기심이 생겨서 바울에게 설명을 요구했습니다.
사실 모든 아덴 사람과 외국인 방문자들이 매일 하는 일은 최신 지식이나 유행에 대해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진리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동일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지식과 문화는 있었지만 진리는 없었습니다. 새로운 것은 만족과 해답을 주지 못했기에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찾았습니다.
바울은 아테네의 학문과 재판의 중심지인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아덴 사람들이여. 여러분을 보니 모든 일에 종교심이 많습니다.
내가 여기저기를 다니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습니다.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서 내가 가르쳐 주겠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종교심은 많았지만 우상숭배와 영적인 무지에 빠져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문명이 발전하면 종교가 사라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더 우상숭배와 자기 숭배에 사람들이 중독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영적인 무지를 지적하고 고쳐 줍니다.
첫째.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만물은 원자들이 우연히 결합된 것이라고 했고 스토아 학파는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범신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인격적인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에피쿠로스 학파는 의미 없는 삶에서 도피하여 쾌락을 추구했고 스토아 학파는 숙명적인 고통을 감수하는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둘 다 창조주 하나님을 몰랐기에 인생의 의미와 행복과 구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생명을 유지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이 뭔가 부족할까봐 섬긴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독립해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의존적인 피조물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역사와 민족의 운명은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 계셔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발견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눈이 어두어 지고 하나님과 멀어져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주장처럼 하나님은 멀리 계셔서 우리의 일에 상관하지 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습니다.(크로소스의 시인 에피메니데스)
넷째. 하나님은 인간의 아버지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손이다”라는 BC 3세기의 스토아 학파 아라투스의 말처럼
하나님의 자손이 사람이 만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모순 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창조의 관점에서 모든 인류는 그 분으로부터 생명을 받은 후손이고 피조물입니다.
구속의 관점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되었습니다. 우상 숭배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존재로 격하시키는 것이고 인간을 사람이 만든 것을 섬기는 존재로 비하하는 행위입니다. 우상숭배는 타락된 인간들의 하나님에 대한 뒤틀린 관념을 반영합니다. 인간에게도 일반은총으로 어렴풋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지만 그것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은총인 성경과 성령의 조명이 필요합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세상의 심판자이시다.
하나님은 자연과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나 타락된 인간은 불의로 진리를 막았습니다.(롬1:18)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로 심판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스토아 학파의 주장처럼 세상은 의미없이 영원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전 세계적인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주와 심판자로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모든 인류는 첫 아담으로부터 창조되었고 마지막 아담을 통해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바울의 메시지를 듣고 대부분은 비웃거나 관심을 보이는 정도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 라는 여자와 다른 사람들이 회심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아덴 선교는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헬라철학을 이용했지만 성경말씀을 인용하지도 않아서 복음을 희석시켰고 회심자도 많지 않았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선교전략은 율법이 있는 사람에게는 율법이 있는 자와 같이 되고, 율법이 없는 자에게는 율법이 없는 자같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변하지 않지만 그들의 언어를 사용해서 문화의 옷을 입고 생각의 접촉점을 이용했습니다. 사실 바울은 헬라의 철학체계를 사용하지 않고 시인의 말을 인용했을 뿐입니다.
바울은 온전한 복음 전했습니다. 창조가 있는 십자가. 심판이 있는 구원을 선포했습니다.
그러할 때 헬라의 지성과 문화를 대표한 아레오바고의 관원이 복음 받아들이고 여자들도 이해하고 회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주님, 저희는 원래 죄 가운데 저주와 고통으로 영원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우리와 같이 되셔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주께서 하셨던 것처럼 주님을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심장을 품고 그들의 생각과 언어와 문화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그들에게 우리와 같은 축복이 있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