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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료 선교의 전략

아가페 2004-01-09 (금) 20:52 22년전 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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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진영(국제협력의사 2기, 소아과전문의, 페루)


목 차 부족한 의료 선교사


선교사의 지역 불균등


변화하는 제 3세계의 의료 선교 현실


3 세계의 의료 선교사


3세계의 선교 병원






부족한 의료 선교사


의료 기능인부터 시작해서 간호 조무사 및 간호사, 의사 등 많은 의료 분야 종사자 중 누구를 의료 선교사라고 할 수 있는가? 실제적으로 제 3 세계에 가서 보면 많은 의료 선교사들을 볼 수가 있다. 또한 그들 특히 미국의 의료 선교사로부터 많은 약품들이 환자들에게 전달 된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의 선교사는 그들의 후원으로부터 많은 의약품을 쉽게 지원 받을 수 있다. 비록 그들이 의사는 아니지만 간단한 증상을 듣고 약을 나누어주는 것은 자신들에게도 어렵지 않을 뿐 아니라 환자들에게도 오히려 편할 수 있어 환영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을 의료 선교사라고 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의료 선교사라고 하면 확실한 의료 선교 사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일정한 병원을 근거로 하여 자신의 사역을 하는 의사와 그를 도와 함께 사역하는 간호사를 포함한 조역자들을 볼 수 있다. 이상적인 의료선교는 의사를 중심으로 그를 도와 의료를 담당할 뿐 아니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여러 분야의 선교사들로 행하여 질 수 있다. 따라서 의료 선교에서 의사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의료선교를 주관하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의료 선교사의 수는 그 수요를 충당하기가 극히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절대적으로 그 수가 부족하다. 제 3 세계의 형편상 의료의 개선이 시급하며 그로 인한 질병과 죽음으로 전 세계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의료선교사의 지원과 배급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의료선교사로서 사역을 하고 또한 본국에 선교보고를 하는 그들 중에는 의사의 자격으로 적절한 병원과 체계적인 의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손에 꼽힐 수 있다고 하겠다. 많은 의료 선교사들의 자격을 보면 의사가 아닌 간호사 혹은 의료 기사 그 외에 의사조무사(physician assistant) 등으로 다양한 의료활동을 펼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현실적으로 부족한 의료 선교사를 충당하기 위해 이들의 역할이 현지의 1차 보건의료에 상당한 도움을 끼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로 인한 문제를 역시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체계적이지 못한 의료 선교가 시행되고 있고 그대로 묵과되고 있는 것인가? 명백한 답은 헌신된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독 의사는 많이 있으나 의료 선교사로서 선교에 헌신하는 의사들의 부족이다. 의사로서 현실적인 요구를 거부하기가 어렵고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후원의 현실이 복합되어 현재의 문제를 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현재로 지나칠 정도로 많이 이루어지는 단기 선교의 영향이 우리 기독 의료인들의 선교의 짐을 가볍게 해주고 있다. 단기 선교로 하나님께의 헌신을 해결한 듯한 착각이 그리고 해방감이 장기 헌신을 막고 있는 것이다.


현지의 의료 선교사가 부족한 이유로 시행되고 있는 엄청난 잘못 중 하나를 기술한다. 자신의 지원 받은 약품과 후원 보고를 위해 그들은 적절한 의료를 행해야 한다. 그러나 어디를 찾아봐도 협력할 기독 의사가 없는 형편에서 적절한 진료를 위해 현지인 의사나 다른 비기독 의사에게 인간애적인 차원의 도움을 의뢰한다. 눈으로 보기에는 누가 봐도 의료선교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으나 내면상으로는 사회기관의 무료 진료와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의료활동에서 의사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의료선교에서 기독의사는 절대적이라고 하겠다. 물론 이를 통해 하나님이 영혼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믿음에는 동의하는 바이나 이것이 우리의 변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기독의사를 찾아보려는 어떤 선교사의 간절함에 우리는 응답해야 하며 진정한 의료선교를 해야 하겠다는 기독의료인들의 각성이 필요한 바라 하겠다.



선교사의 지역 불균등


도시화 현상이 극화된 우리 나라에서는 의사를 포함해 목사까지도 이런 현상에 휩쓸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 심한 것은 선교의 현장에서까지도 지역 불균등이 여실히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선교잡지에서는 원주민에게 오기를 싫어하는 선교사의 실태를 고발하고 있었다. 의료 선교사로 헌신된 이들이 정말 필요한 지역에 갈 준비를 한다는 것은 목사들로서보다도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교지는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결정되어지는 것으로 우리의 요구가 관철돼야 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하는 제 3세계의 의료 선교 현실


세계는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몇몇 선진국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하겠다. 모든 세계가 발전을 지향하고 있고 실제적으로 많은 것이 바뀌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의료 선교는 제3세계의 발전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고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목사의 입국과 전도를 법적으로 금하는 나라가 있어 그것의 대치로 전문인선교사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많은 환영을 받고 입국하여 자신의 전문성으로 현지에 도움을 주며 적절히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어떠한 법적인 재제에도 꿋꿋이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현지의 호의에도 많은 혜택을 받았으나 그들을 관리할 법적 영향력이 그들의 활동지역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현재 변화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은 법적인 적합성이며 서류상의 타당성이다. 전문인 선교사가 갖추어야 할 것이 자신의 전문성에 대한 현지의 인정인 것이다. 이것은 의료 선교사의 경우 더욱 절대적이어서 환자를 진료하는 입장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선진국에서 헌신한 많은 의료 선교사들은 자신의 의료적 우월성으로 현지에서 인정을 받고 진료를 하는데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이유로 의료선교사들의 대처가 필요한 것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법적인 지식이 부족하고 그 대처가 미흡하다는 것은 선교적으로 빨리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선교사가 더욱 겸손히 그들의 요구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이런 문제는 앞에서 말한 의사가 아닌 단순히 의료종사자로서 (혹은 간호사라 하더라도) 현지에서 의료선교를 하는 사람들에게 심각성이 더욱 크다고 하겠다. 현지는 점점 냉정해지고 있어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이 우리는 보호하고 도와주리라는 것은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의료에 있어서 항상 가지고 있는 의료사고의 위험성은 환자에게는 말할 나위 없는 아픔이지만 선교를 하러 온 선교사에게도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문제에 적절히 대처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면 선교의 전략에 많은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는 선교사의 생명과 같은 문제이므로 시급한 지식과 대처가 요구된다고 하겠으나, 부가적으로 의료 선교사가 법적으로 대처할 많은 문제들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마디로 현지에서 선교사로 사는 것 자체가 그들의 법을 준수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의료 선교가 본국에서 의약품을 지원 받는 경우 역시 통관 등의 법적 문제를 원활히 해결해야 한다. 선교사는 문화적 우월 의식으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동화되어야 하는 입장으로 아무리 원시적인 지역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과 동등하게 살아야 할 준비를 해야 한다.



3 세계의 의료 선교사


개인적으로 의료 선교는 병을 치료해야 하는가 아니면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에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두 가지를 다하여야 한다는 막연한 대답에 반응하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 선교에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두 가지를 동일한 비중으로 감당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어느 것 한가지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 전제되어 한가지에 치중 노력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료 선교는 선교에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큰 단점을 소요하고 있다. 우리가 의료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했을 때 환자들이 얼마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 손에 환자에게 줄 처방전을 들고 환자를 보면서 복음을 전한 뒤 주님을 영접하겠냐고 했을 때 그들이 무엇으로 인해 예수임을 믿겠다고 하겠냐는 것이다. 영접기도를 한 뒤 의사의 손에 있던 처방전을 건네 받고야 안심을 하고 집에 돌아가 모든 것을 다시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결국 의사의 전도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그들을 감동 시킬 때 진정한 전도가 이루어 진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의료 선교사가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의료 선교사로서의 그의 위치가 존재할 수 있으나 의료 선교사가 의료를 망각하면 선교사의 자질마저 잃어버린다고 생각하고 있다. 병원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특별히 선교 병원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들이 환자들의 영적 관리자 혹은 치유자인 것이다. 그들은 환자들의 영혼을 상담하고 이들을 치유하고 육신과 정신 그리고 영혼 세계의 유기적 연관을 이해하여 서로간에 유기적 파괴를 방지 치료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역할의 분담이 전제된 후 의료 선교의 역할은 한층 더 명백해 진다. 그들은 좀 더 환자의 육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의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더욱 명백한 것이 의료선교사의 의료적 자질이다. 의학적으로 의료선교사는 확실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복음전도를 중시한 나머지 진료를 하나의 악세서리로 여긴다면 환자들은 육체적으로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변화기가 힘들게 된다. 게다가 계속적인 추적진료가 어려워지고 대상지역에서 인정을 받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결국 환자들이 오기를 거부하고 다른 병원을 찾아간다든지 아예 치료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 지역에 필요한 의사는 어떤 한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가 아니다. 1차 진료를 담당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자기가 담당하는 분야의 전반적인 지식을 소유한 의사인 것이다. 그러나 환자를 치료하는 자세로서 급변하는 의학을 체감하고 새로운 개념과 치료를 습득하려고 노력하며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나 진단과 치료의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곳에서 고정적으로 진료하는 평생 의료선교사에게 맡기기 보다는 보다 나은 지역의 병원의 의사와 정기적인 교대가 그들 자신에게도 훨씬 발전적일 수 있고 의료선교의 질과 효과도 극대화하게 된다.



3세계의 선교 병원


선교 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는데 있어서 기업경영 마인드만을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 마인드를 소홀히 하여서는 정열뿐인 모래탑이 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기독교적인 정신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는 무수한 이 땅의 병원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현재의 많은 선교병원들을 보라. 그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경우가 이들 두 가지를 조화하지 못한데 있다고 하겠다. 설립 당시의 대부분 선교병원은 기독교 정신을 기본으로 한 병원이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기업 마인드는 세상적인, 사탄적인 생각이라고 두려워 했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남으로서 자본의 부족과 운영의 난이 심화되고 결국에는 그들이 그렇게 무서워 했던 기업 마인드에게 완전히 병원을 빼앗겼던 것이다. 선교 병원도 하나의 병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 마인드란 경제원칙인 소수의 자본으로 초대의 효과를 얻는 것이며 바로 이윤의 창출을 의미한다.


3세계의 경제적인 문제는 경제의 불균등 곧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일부 소수 극부층의 집단이 거주하는 지역은 웬만한 선진국의 거리를 능가하는 환경을 자랑하고 있고 게다가 그들이 누리는 의료 혜택은 최고의 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의료를 위한 대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못 된다. 반면 대부분의 현지 극빈층의 지역에는 가난과 굶주림으로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의료는 하나의 장식일 수도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의료는 생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이면 충분하다. 자연법칙에 의존해서 사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괴리된 두 지역 사이에 우리는 어디에 서야 하는가가 선교 병원이 가지는 고민이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결코 부유한 자를 찾아오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는 낮은 신분으로 권력층과 부유한 사람보다는 없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오셨다. 이런 면에서 어디에서 선교 병원을 시작할 것이냐 하는 것은 자명한 듯싶다. 이것은 많은 상업적인 병원들이 부유층을 겨냥하는 제 3세계의 현실과는 반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므로 현실과 반대가 되는 것에는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측면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시려 이 땅에 오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으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예방의학적인 측면을 거부하신 말씀이 아니다. 바로 예수님을 모르는 영혼에게 자신을 보이려고 오셨다는 것이다. 바로 이 영혼의 문제는 그들이 가난하건 부자이건 모두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가난한 사람들 만을 우리 선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중심을 모르는 결정일 지도 모른다. 그러면 극부층인 그들의 거리에도 선교 병원이 들어 갈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선교 전략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언급한 우리의 주요 타겟인 빈민층의 선교 병원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많은 선교 병원이 그리고 많은 단기 의료 사역이 하고 있듯이 그들의 질병을 저가로 진료하고 많은 무료약을 주고 교육과 예방을 통해 지역사회의 건강을 증진 시키도록 하는 것이 이곳의 목표일 것이다. 이들에게는 고가의 약이나 장비 보다는 저가로 많은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한 환자를 살리는 일에 무수한 자원과 노력을 경주하는 일 보다는 동일한 자원과 노력으로 무수한 환자를 치료하는데 노력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느낄 지도 모른다. 이곳 병원에서는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니 이윤을 창출하려는 노력 자체가 쓸데 없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베풀 분량이 우리가 그들에게 얻은 것보다 항상 넘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후자의 부층의 거리에 우뚝 서 있는 선교 병원은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하는가? 이곳의 병원은 앞에서 말한 빈민층의 병원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대상은 자신의 질병과 고통, 염려를 덜어 줄 획기적인 것을 항상 찾고 있다. 이들에게 의료비는 생활 필수품을 구입하는 것과 동일한 중요성을 갖고 있다. 물론 이들에게 우리는 영적인 가난을 일깨우고 그것의 해결책을 제시할 명백한 의무를 갖고 있다. 이 점은 빈민층의 선교 병원이 우선하여야 할 일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부유층의 선교병원이 살아 남기 위해 선교 병원의 질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들에게는 최선의 장비와 의료로써 접근하고 최고급의 시설과 안락한 분위기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곳에 위치한 무수한 상업적 병원과 경쟁하여 뒤지지 않을 정도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로써 우리는 이윤을 창출하고 재투자를 하고도 남을 정도의 흑자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로써 이 두 병원의 접목이 필요한 것이다. 한 선교 병원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다른 선교병원은 계속적으로 나누어 주기에 부족한 형편에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두 선교병원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현재 선교학적으로 보내는 선교사와 가는 선교사가 존재하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와 동일한 의미로 보내는 선교병원과 가는 선교병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많은 교회에서 일정 고정비율을 선교비로 지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교회를 축복하고 경제적으로 결코 어려움이 없다고 간증하고 있다. 이와 같은 능력으로 두 개의 선교 병원이 존재한다면 우리의 선교 전락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부유층의 선교병원이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이윤을 창출하는 목적은 분명해진다. 빈민층의 선교병원을 지원하고 동일한 선교 역사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다만 재정적으로만 교류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병원으로서 의료인들을 교환하고 오래된 의료장비를 장기간 쓰도록 할 수 있으며 운영을 함께 의논한다면 진정한 한 병원이라고 하겠다.





송진영 선생님은 제2기 국제협력의사로 남미 페루의 아마존정글에 있는 이끼투스에서 이년 반 동안 사역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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